[인터뷰] '희생부활자' 곽경택 감독 "노처녀 시집 보내는 기분"

입력 2017-10-12 07:00   수정 2017-10-12 09:18

'친구'·'극비수사' 곽경택 감독의 미스터리 스릴러 '희생부활자'

"신선한 소재+진부한 모성애?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
"김해숙 연기에 믿음…김래원 때문에 제작, 큰 신세 졌어요"



곽경택 감독이 큰 짐 덩어리 하나를 내려놨다. 2015년 '극비수사' 이후 공을 들인 미스터리 스릴러 '희생부활자(RV:Resurrected Victims)'를 내놨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곽경택 감독은 "어제 굉장히 편안하게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 영화가 나를 굉장히 짓누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완전하진 않지만 일종의 해방감과 비슷한 기분을 맛봤다. 노처녀 시집 보낸 것 같은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의 출발은 이렇다. '극비수사' 편집실에서 우연히 박하익 작가의 소설 '종료되었습니다'를 펼치면서부터다. 그는 소설에서 희생부활자라는 소재를 가져다가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그래서 곽 감독의 영화는 소설과 메시지 자체가 극명하게 갈린다. 과감한 도전이다.

영화 '희생부활자'는 억울한 죽음 뒤 복수를 위해 살아 돌아온 엄마 명숙(김해숙)이 초임 검사인 아들 진홍(김래원)을 공격하면서 시작된다.

"성동일이 뒤풀이에서 반농담식으로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RV를 모성으로 푸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요. 처음엔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것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좀비 세대가 아니라 '전설의 고향' 세대거든요. '내 다리 내놔라' 하면서 '원한'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RV 역시 한(恨) 때문이니까 서양식 좀비보다는 동양의 귀신 쪽이 가깝겠네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취하고 있지만 결국 모성을 다룬다. 곽경택 감독은 "좋은 세계관을 구축해놓고 신파로 풀어?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흔히들 말하는 '진부한 모성애' 말고는 이 이야기를 끝낼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해명했다. 곽 감독이 모성을 고집하는 동안 제작사와의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는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식 일이라면 불길이라도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엄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식들은 그런 부모를 귀찮아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상황이 더러 있습니다. 극 중 '귀찮아서'라는 김래원의 대사가 있는데 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 자식이 저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자식들은 시간이 지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들에 반대도 많았죠. 너무 튄다고."

그는 초현실적인 소재를 매우 현실적인 배경에 담았다. 작품 곳곳에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세밀한 고찰과 애처로운 마음이 묻어난다.

"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일본이 자살률 1위라고 해서 '우리는 그래도 행복하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한국이 1위입니다. 서로 뺏으려고 하고 자신의 가치가 이기는 게 중요한 세상이 됐습니다. 도태되는 사람들은 삶을 포기하고요. 자살 사이트에 존속살인 사건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자 '희생부활자'에선 행복한 사람을 아무도 넣고 싶지 않았어요."

영화는 그래서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처음부터 끝을 맺는다. 곽 감독은 관객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다양한 장치를 영화 곳곳에 배치했다.

"이렇게 황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잠깐이라도 '에이~ 가짜야'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끝입니다. 감독으로서 뭐든지 채워 넣었어야 했습니다. 비, 체내 발화 설정 등 비주얼적인 것들을 준비했죠. 미스터리 구조를 풀었다 조였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특히 많은 부분을 연기자에 의존했고요."


김해숙을 비롯해 김래원, 성동일, 전혜진, 장영남 등 주조연 배우의 연기는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감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엄마 명숙 역에는 김해숙 말고도 다른 중견 배우도 물망에 올랐었다.

"결국 김해숙 선생님이 제일 잘 하실 것 같았어요. 연세가 있는 연기자들은 이미지의 극단적인 변화가 부담스러울 수 있거든요, 그런 것에서 자유스러운 분이셨죠. 김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어머니상'이라고 하듯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보통의 엄마, 복수의 처단자, 용서를 구하는 엄마의 모습이요. 연기 하시는 모습을 보면 믿음직스러웠죠."

명숙의 아들에는 김래원이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은 이미 영화 '해바라기',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엄마와 아들로 호흡을 맞추며 '국민 모자(母子)'라는 수식어도 챙긴 바 있다.

"사실 처음에 부담스러웠어요. 득이 될까 싶었죠. 김해숙 선생님이 '또 래원이 엄마에요?'라고 했다면 고민됐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 좋아요. 이번엔 이상한 엄마잖아요'라고 하셨어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의식이 발동하신 것 같습니다."

김래원은 최근 진행된 언론시사회 직후 "아직도 캐릭터의 감정에 혼란스럽다"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곽경택 감독은 "배우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도리어 고마움을 표했다.

"배우가 하기에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었습니다. 연기하는 내내 당황, 당혹, 놀람 과 같은 비슷한 감정이 이어져요. 촬영하면서도 질문을 계속하는 통에 간혹 '자기가 알아서 하면 좋겠구먼'하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하하. 감독과 배우 사이엔 질문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감독이 배우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약속이기 때문이죠. 래원이에겐 큰 신세를 진 기분입니다. 김래원이 출연을 결정했기 때문에 작품 제작이 가능했거든요."

곽 감독은 2001년 영화 '친구'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800만 관객을 들인 바 있는 일종의 '네임드' 감독이다.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묻자 돌아온 것은 현실적인 바람이다.

"부가 판권 파는 것 포함해서 170만 명을 넘기면 손익분기점 달성입니다. 일단 그거만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년 넘도록 시달린 거 생각하면... 투자자에게 손해만 안 끼치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200만을 넘기면 더할 나위 없죠. 이런 얘기 해도 되나요? 하하."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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