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한평생의 기억은 물론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고 살아간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당신은 곧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어떨까. 영국 군인이었던 크리스 그레이엄은 서른세 살에 이런 진단을 받았다. 그는 어렵게 마음을 추스르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기로 다짐했다. 그레이엄은 이 과정에서 겪은 심경 변화를 《나의 오늘을 기억해 준다면》에 담았다.
그레이엄은 진단 뒤 북미 대륙을 횡단하는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책은 대부분 그가 자전거 여행을 하며 겪은 일, 했던 생각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238일간 혼자서 페달을 밟아 2만6000㎞를 질주했다. 이 과정에서 그레이엄은 평소에 하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수차례 흑곰과 맞닥뜨렸고 고속도로 위를 들소 떼와 함께 달리기도 했다. 뜨거운 사막 위를 달리는가 하면 눈 덮인 길을 지나기도 했다. 그는 늘 순간적인 판단 능력이나 방향감각이 사라져 가야 할 길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거친 숨소리와 바퀴 소리만이 들리는 긴 고요 속에서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길고 긴 여행은 그에게 인생과도 같았다. 그는 책 속 모든 장의 마지막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으로 시작하는 한 문장을 넣었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나아가자’ ‘…미소를 짓자’ ‘…노래를 따라 부르자’ ‘…더 힘차게 페달을 밟자’ 등이다. 여행에서 마주친 고난을 이처럼 긍정적인 자세로 이겨냈듯 자신의 인생에 던져진 고난에도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는 그의 목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손영인 옮김, RHK, 340쪽, 1만4800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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