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판사부부도 굴욕… '차량 내 아동 방치 = 범죄' 인식 확산돼야

입력 2017-10-13 18:05   수정 2017-10-27 18:08

경찰팀 리포트

미국선 부모 엄벌하는데 한국은 처벌법 없어
차 안에 아이 혼자 놔두면 미국선 누구든 경찰에 신고
국내서도 비슷한 사례 많지만 구체적인 처벌 규정 없어
카시트 착용도 선진국과 인식 차

국회서 최근 개정안 발의 움직임



[ 이현진 기자 ]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는 김정호 씨(36) 가족이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 미국에 간 2012년,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아이를 혼자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몸에 익었다. 여름철만 되면 아이가 혼자 차 안에 있다가 사망하거나 혼자 둔 부모가 체포되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괌에서 같은 혐의로 체포된 법조인 부부 사건도 현지 한인에게는 놀라운 뉴스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에서 차 안에 혼자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누구든 경찰에 신고한다”며 “한국과 인식 차이가 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데 간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른바 ‘괌 법조인 부부’ 사건으로 차량 내 아동 방치를 포함한 아동 방임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에 위험에 노출되는 아이들이 적지 않지만 법률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일회성으로 소비하지 않고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가용 차·어린이집 버스에 방치된 아이들

추석 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2일. 미국령 괌의 K마트 주차장에서 수원지법 판사 설모씨(35)와 남편인 변호사 윤모씨(38)가 체포됐다. 문을 잠근 채 자동차 안에 아들(6)과 딸(1)을 방치한 혐의다. 괌 가정법원은 5일 설씨 부부에게 각각 벌금 500달러를 선고했다. 가족은 다음날 귀국했다. 연휴가 끝난 10일 수원지법은 설 판사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 대한변호사협회 역시 윤 변호사 징계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다. 둘 다 법조인임에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현지 경찰에 거짓 진술하는 등의 부적절한 언행 탓에 이번 사건은 유독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차량 내 아동 방치로 미국에서 한인들이 처벌받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2015년 7월에도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서 코스트코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 아이를 혼자 방치한 혐의로 한인 A씨가 체포됐다. 2014년 8월에도 캘리포니아에서 30대 한인 부부가 세 살배기 딸을 차에 두고 쇼핑하다가 아동 방치 혐의로 체포됐다. 대부분 아이가 자는 사이에 쇼핑을 마치려다 벌어진 일이다.

차량 내 아동 방치는 최악의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지난해 7월 말 광주에 사는 최모군(5)은 유치원 통학버스에 홀로 7시간 동안 방치돼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당시 최군의 출석 여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관계자 3명은 금고형 처벌을 받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경기 과천시에서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홀로 남겨진 5세 아동이 2시간30분 만에 구조되기도 했다.

약한 처벌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아동복지법 17조6항은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금하고 있다. 차량 내 방치 역시 방임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실제로 형사처벌까지 간 사례는 거의 없다. 경찰 관계자는 “어린이집 통학차량 등에서 방치돼 사망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처벌이 이뤄진다”면서도 “단순히 부모가 차 안에 아이를 두고 자리를 비우는 일은 신고 대상이라는 인식이 한국에선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나홀로 집·카시트 착용도 인식 차 커

차량 내 아동 안전과 관련한 또 다른 문제는 카시트다. 지난해 5월 첫 아이를 출산한 박지영 씨(31)는 아이를 데리고 택시에 탈 때 카시트 문제로 늘 곤욕을 치른다. 박씨는 “카시트를 설치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카시트에 탄 아이가 우니 기사가 싫은 소리를 하더라”며 “주변에서 ‘아이가 그렇게 싫어하는데 그냥 엄마가 안고 타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씁쓸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아이를 출산한 뒤 퇴원할 때 카시트가 없을 경우 퇴원 수속을 해주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국내 역시 2006년 도로교통법이 개정돼 영유아 카시트 착용을 의무화했지만 장착률은 33.6%에 그친다. 독일(96%) 영국·스웨덴(95%) 미국(94%) 등 다른 선진국 수준을 크게 밑돈다. 아직 인식과 문화가 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집에 아이가 혼자 있는 것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 미국은 노스캐롤라이나·메릴랜드주 8세, 뉴멕시코·오리건주 10세, 일리노이주 14세가 넘어야 어린이가 혼자 집에 있을 수 있다. 캐나다는 13개 주 가운데 3개 주가 12~16세 이하 아동을 혼자 둘 경우 처벌한다.

‘나홀로 집’을 미국 등처럼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방치에 대한 정의 자체가 모호해서다. 하루에 몇 시간 홀로 있어야 방치인지, 몇 살부터 혼자 있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논의부터 해야 한다. 4세 아이가 15세 학생과 같이 있으면 방치인지 아닌지 등 상황도 복잡하다. 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복지팀장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연령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아이를 혼자 둘 수밖에 없는 맞벌이 부부 등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가정에만 오롯이 짐 지울 게 아니라 사회적 보호시스템도 고민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개정안 발의 속속…이번에 달라질까

‘괌 법조인 부부 사건’을 계기로 관련 법안 개정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10일 운전자 및 동승자 없이 미취학 아동을 차량 내에 방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달 21일에는 고속버스나 시외버스에 유아용 카시트 장착을 의무화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여객자동차 운송사업자는 신규로 도입되는 차량부터 유아보호용 장구를 장착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대중교통에서 카시트를 쓰기 어려워 아기띠 등으로 대체하는 부모들의 어려움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법만으로는 아동 보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양육자뿐 아니라 주변 사회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이 있더라도 카시트 장착 여부 등은 아이의 연령을 먼저 확인하는 등 실질적으로 단속이 쉽지 않다”며 “차량 내 아동 방치, 카시트 등 안전 문제는 인식 개선도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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