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가상화폐 규제해야 하나

입력 2017-10-13 18:11  

최근 가상화폐 관련 규제를 강화한 정부 정책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가상화폐가 사실상 투기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 규제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 생각이지만, 핀테크(금융기술) 등 관련 업계에선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운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가상화폐는 지난해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올해 초까지는 ‘화폐 인정’ 여부가 쟁점이었다. 실체가 없는 데다 화폐로서 기능도 못해 ‘통화’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지적과 함께 향후 화폐로 활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주장이 맞섰다. 이에 대해 정부는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다’고 결론을 내렸다.

최근엔 가상화폐공개(ICO) 행위가 쟁점이 됐다. ICO는 주식시장에서 자본금을 조달하는 기업공개(IPO)처럼 블록체인 관련 업체가 신규 가상화폐를 발행해 투자 및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뜻한다. 국내에선 올 들어 ICO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29일 ICO를 전면 금지하는 규제 방안을 내놨다. 이달부터 기술, 용어 등과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ICO를 불법행위로 간주해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전면 금지 규제를 들고 나온 건 ICO가 사실상 투기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판단에서다. 가상화폐 투자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적발되는 등 투자자 피해도 속출하고 있으며, 이대로 방치했다간 더 큰 금융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관련 업계에선 기술력이 검증되지 않은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ICO를 추진하는 만큼, 정부의 규제 강화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반대와 우려도 많다. 가상화폐 시장이 과열양상을 띠고 부작용도 일부 나타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신기술과 신산업이 성장할 토대까지 없애는 건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다. 가상화폐 관련 업계 종사자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란 반발도 상당하다.

이번주 맞짱토론 주제는 가상화폐 규제를 강화하려는 정부 정책의 적절성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와 정호석 법무법인 세움 대표변호사가 각각 찬반 의견을 제시했다.

■ 찬성

가상화폐 이용한 투기 방치하면 대형 사고로 공공이익 해칠 수도
규제 통해 시장 참여자에 공정·투명한 룰 제공해야

모든 스포츠에 룰이 존재하듯이 모든 경제활동에도 규칙은 필요하다. 산업 내 게임의 법칙을 정해서 불확실성을 없애고 공공의 이익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다. 공정하고 투명한 룰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게 규제다. 이는 정부 횡포가 아니라 사회를 보호하는 장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규제 완화 및 탈규제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혁신을 위해 모든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가끔 나오지만, 대부분 논의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범주 내에서 이뤄지고 있다. 현재 탈규제에 대한 논의는 규제를 완전히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규제를 없애자는 데 있다는 걸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규제는 합리적일 수도 있고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합리적인 정책은 그 정책으로 인한 사회의 이익 증대가 그에 따른 비용보다 큰 정책을 의미한다.

새로운 현상에 대한 합리적 규제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현상에 대한 구체적·개념적 분석, 정책적 고민이 동반돼야 하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가상화폐 시장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사기, 투자위험 등 당장 제재·관리가 필요한 문제들도 매우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언제든 대규모 사고가 일어나 공공의 이익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금융위원회가 가상화폐공개(ICO) 금지 정책을 내놓은 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분석과 논의를 거쳐 가상통화 시장을 이해하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규제 방안을 수립한 뒤 ICO를 허가하는 게 정책적, 위험관리적 관점에서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산업규제 정책은 해당 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가상화폐 관련 논의가 이어지면서 다른 국가에 비해 국내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활성화 방안 정책을 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규제의 목적은 산업 내 게임의 법칙을 정해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공공의 이익을 도출하는 데 있다. 무조건 특정 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가상화폐산업 활성화가 4차 산업혁명에서 우위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렇더라도 정책에 기반을 둔 국가 주도 활성화가 규제의 목표가 되면 안 된다. 가상화폐 규제 역시 큰 틀의 목표는 시장 참여자에게 공정한 룰을 제공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있어야 한다.


물론 가상화폐 규제가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가상화폐라고 불리는 것들이 화폐로 이용되지 않고 투자자산으로 이용되고 있어서다. 가상화폐들을 화폐로 규제하기에는 구체적인 현상이 부족하기 때문에 금융자산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어떤 규제 방안을 수립하느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가 마주한 어려움이다.

가상화폐 규제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규제 방안을 수립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 사람은 일본, 미국 등 해외의 규제 움직임에 매우 민감하다. 그러나 규제는 국가마다 처한 상황, 목표, 관점, 역사가 다르다. 무조건 외국 규제가 옳고 쫓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

가상화폐가 새로운 투기수단이나 투자처로 남는 것이 정부 정책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할 때 현존하는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못 박는 규제는 정책의 방향성과 부합되지 않고 장기 관점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 반대

산업·기술 고려않고 부작용에만 초점…적극 육성해 신성장동력 삼아야
미국·싱가포르 등 다수 국가 '규제'보다 '제도화' 주력

금융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이하 ‘가상통화 TF팀’)가 지난달 29일 가상화폐공개(ICO)에 대한 전면적 규제 방침을 밝혔다.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ICO를 유사수신행위의 한 형태로 규정하고, ICO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가상통화 TF팀이 지난달 1일 ‘증권 발행 형식의 ICO에 대해 자본시장법을 엄격히 적용해 규제하겠다’고 발표한 것보다 한층 강화된 방침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발표된 이번 규제안은 국내 블록체인산업 관계자들뿐 아니라 해외 관계자들에게도 큰 이슈가 됐다.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ICO 전면 규제를 선언한 데다 그 여파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가상통화 TF팀은 이번 규제안 취지를 ‘시중자금이 비생산적, 투기적 방향에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생산적 투자로 전환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조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규제안이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인지는 의문이다. 글로벌 시장 상황과 국내 산업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한국은 가상화폐 거래량 규모로 세계 10위 안에 있는 거래소 세 곳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가상통화 거래량의 40%를 점유하며 이 시장을 주도하는 나라다.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직 블록체인 관련 기술과 회사들은 발전이 더디다. 최근에야 한 프로젝트가 글로벌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6시간 만에 약 233억여원의 자금 모집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은 다르다. 그동안 이 산업을 신기루나 투기로만 치부했던 금융, 산업계도 지금은 기술의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당국의 우려처럼 가상화폐 투자 시장이 과열되면서 실체 없는 ICO들도 등장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활용한 다단계 투자, 사기,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

이번 규제안의 문제는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블록체인 기술 및 산업의 성장성은 간과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나타난 부작용, 특히 가상화폐 투자 분야에 국한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비중을 뒀다. ICO를 전면적으로 금지해 가상통화 TF팀이 규제안의 취지로 이야기한 생산적 투자가 가능하게 될지도 의문이다.

현재 ICO 전면 규제를 발표한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다. 가상화폐 TF팀이 규제 국가로 소개한 나라들(미국, 싱가포르 등)도 그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전면 규제가 아니라 ICO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준 취지가 크다. 부작용을 방지하면서도 가상화폐산업을 제도화하려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금융당국이 제도화가 아니라 전면 규제로 방향을 틀면서 이제 막 성장하는 블록체인산업의 앞길을 막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금의 상황을 과거 벤처붐이 불었을 때와 비교해보자. 당시에도 투자사기로 인한 피해 사례들은 항상 이슈가 됐다. 하지만 그런 피해를 막기 위해 벤처 투자나 인터넷 기술 확산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마련됐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까.

벤처투자, 정보기술(IT)산업을 육성했던 것처럼 블록체인 기반 산업을 육성하되, 사기나 유사수신행위 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올바른 접근 방법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산업 관계자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겠다는 이번 조치는 시대착오적이며 행정 편의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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