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41도 100년 만의 폭염
'거미줄' 전선과 차량 복사열 초강력 돌풍이 불씨 더 키워
"미국 최대 와인산지 재기 불능"
[ 박근태 기자 ]
오랜 가뭄으로 바짝 말라버린 나뭇가지와 나뭇잎은 불쏘시개처럼 타들어갔다. 시속 100㎞가 넘는 ‘악마의 바람’은 불씨를 소방차도 닿기 어려운 숲 한가운데까지 퍼뜨렸다. 곳곳에 널린 전력선과 뜨거운 차체에서 반사된 복사열이 대화재의 도화선이 됐다.
지난 8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나파밸리에서 시작된 산불이 최악의 피해를 낳고 있다. 사망자만 놓고 보면 캘리포니아주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냈다. 와인 양조장이 밀집한 미국 최대의 와인 산지는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과학자들은 이번 산불이 큰 피해를 준 원인을 강풍과 기록적인 고온에서 찾고 있다.
미국국립기상청(NWS)에 따르면 지난 9월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은 섭씨 41도까지 치솟으며 100년 만에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에 큰 피해가 난 산라파엘도 42도까지 치솟았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해마다 산불이 수시로 일어난다. 하지만 이번 산불 피해 규모가 큰 건 지난겨울 많은 비를 맞고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잡목들이 고온 현상으로 더욱 바짝 말라버려 불에 더 잘 탔기 때문이다.
일명 ‘디아블로(악마) 바람’으로 불리는 초강력 돌풍도 불씨를 널리 퍼뜨렸다. 산에서 불어내리는 뜨거운 ‘푄’ 바람은 지난 8일 밤 순간 최대 시속 127㎞에 달했다. 르로이 웨스터링 UC머시드 교수는 “비정상적으로 건조한 기온과 돌풍, 산불 발생을 일으키는 원인은 결국 기후변화밖에 없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국에서 대형화재는 발생 횟수와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기후 모델은 큰 비에 이어 큰 가뭄이 번갈아 오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대니얼 스와인 UCLA 교수는 “심지어 비가 많이 와 강수량이 충분한 해도 매우 더운 여름이 오면 식물들은 작은 마찰에도 불씨를 일으키는 부싯돌처럼 된다”고 말했다. 미국 아이다호대와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1979년 이후 미 서부 지역 숲의 가뭄이 1.5배 길어졌다고 발표했다.
숲의 도시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이번 산불을 확산시킨 22건의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일부에선 벼락을 발화 원인으로 꼽지만 최근의 기상 분석 결과 벼락이 떨어진 사례가 감지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통계를 보면 대부분의 산불은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 사례가 많다. 산불 원인 중에는 보트 트레일러 체인이 땅에 끌리거나 차량 엔진에서 나온 뜨거운 열이 거대한 산불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 고압선에서 일어난 불꽃이 원인이 된 사례도 보고됐다. 미국공공시설위원회는 2015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일어난 큰 산불이 소나무가 고압선과 접촉해 불꽃이 일면서 시작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기 회사에 83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기상 당국은 이번 산불이 앞으로 몇 주간 지속하다가 다음달 장마가 시작돼야 불길이 잡힐 것으로 보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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