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 저마다의 예측과 해결 방안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했다. 아마도 우리가 믿고 있던 중국 전문가들은 몽땅 진흙으로 만든 보살이었는지도 모른다. 잘못 판단한 것을 덮으려고 엉뚱한 핑계를 대는 사례도 많다. 한·중 수교 25년이 돼서도 중국에 대한 예측이 늘 어긋나는 이유다. 중국에서의 기업 철수가 전염병처럼 번진다. 이것 역시 잘 따져봐야 한다.
어쩌면 사드가 고마운 이들
얼마 전 신임 주중 한국대사가 중국 내 한국기업 피해가 오로지 사드 때문만은 아니라는 발언을 했다. 이를 놓고 매체 및 정치권에서의 비판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 필자는 할 말이 없지만 내용의 사실 여부는 짚어보고 싶다. 사드의 피해가 엄중한 것도 맞지만 주중대사의 발언에 동의하는 이들이 ‘현장에는’ 뜻밖에 많다. 이 와중에 얄밉게 사드와 거의 무관한데도 사드 피해에 묻어가려는 이가 적지 않다. 이런 이들은 사드와의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헷갈리게 한다. 아직 찾지 못한 해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면에서 매우 고약하다.
2000년 초부터 한국 대기업들이 중국의 전기자동차용 전지산업에 진출했다. 당초 중국 정부의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수용하고 중국에 진출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중국 정부의 혜택을 한국 기업만 예외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곧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감내하며 버틴 수년의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에 대해 해당 회사 또는 책임자들은 최근에는 “중국시장은 사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은 손실을 봐도 그런대로 견딜 힘이 있다. 하지만 대기업을 바라보고 중국에 동반 진출한 중소기업들, 기회를 보고 따라온 수많은 개인과 자영업자도 있는데 이들의 고통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사드 피해자 코스프레'도 이어져
물론 이런 중소기업과 개인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대기업에 묻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해당 사업을 위해 진출한 대기업들의 그간의 시간표를 들여다보면 이들의 피해는 사드 사태와 인과관계가 없음이 바로 드러난다. 사드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중국 정부 보조금 대상에서 매번 탈락하고 제외돼왔다. 작년 말부터는 “규정이 바뀌어도 한국 회사는 혜택 못 받아!”라며 전지사업에 뛰어든 중국 친구도 있었다. 전후를 살펴보면 속수무책으로 있다가 때마침 ‘사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모양새다. 코끼리가 넘어지며 죽는 순간에 바늘 한 방에 찔린 것을 보고는 ‘코끼리는 바늘 때문에 죽었다’고 보고하는 것과 다를까?
일부 기업-콕 집어 말하면 그 기업 내 중국 책임자들-이 자신들의 무능함과 업무 착오를 사드에 미루는 행태를 경계해야 한다. 사드 보복의 공포는 이런 이들 때문에 확대돼 심지어 “이제는 중국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냐?”라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사드 보복의 피해는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다는 말에 공감하는 이유다.
중국 없는 중국전략
베이징마쓰시타의 브라운관 공장은 톈안먼 사태를 겪어낸 공장이다. 당시 베이징의 치안은 불안했고 중국당국은 일본인 주재원들의 철수를 종용했다. 이때 일부 일본인은 귀국을 거부하고 공장을 사수했다. 이 얘기는 수많은 중국공산당원을 감동시켰으며 일본인에 대한 신뢰를 끌어냈다. 이후 마쓰시타는 중국에 50여 군데 거점을 확보하며 중국과 깊은 신뢰를 쌓아갈 수 있었다.
한편 중국인이 신뢰를 보내는 일본인 중국통들은 회사 또는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최고의 민간 외교 역량이 됐음이 분명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장품 회사가 중국에서 증설 계획을 포기하고 인접 국가로 이전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일반 경영전략 차원에서 이런 발 빠른 움직임은 탁견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요소를 감안한다면 마쓰시타의 길게 본 승부가 오히려 정답일 수도 있다. 결정권자가 반드시 중국통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주위에 중국통이라는 중국 참모가 있다면 그들이 ‘진짜 보살’인지 아니면 ‘진흙으로 만든 보살’인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은 결정권자의 몫이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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