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 경제학자가 22시간 카메라 앞에 선 사연

입력 2017-10-16 18:52  



(김은정 경제부 기자) “평생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강의만 해봤지,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허공을 보면서 강의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청중의 반응을 알 수 없으니 처음엔 언제 농담을 하고 언제 진지해 져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10시간 정도 지나니 점차 적응이 되더라고요.”

‘황금 연휴’였던 추석 연휴 기간 직전 ‘정갑영의 첫 경제학’(박영사)이라는 책을 선 보인 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의 말입니다. 그는 연세대 제17대 총장을 역임한 국내 대표적인 경제학자입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석사를,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86년부터 2016년까지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로, 지금은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정 교수는 22시간짜리 사전 녹화를 통해 공개한 무료 경제학 강의를 편집해 이번에 책으로 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갑영의 첫 경제학’입니다. 총장 임기 마지막 해인 2015년에 제공한 무료 공개 강의가 반응이 좋아 책으로 까지 내게 된 겁니다. 강의가 입 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면서 수강자 사이에 강의를 책으로 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합니다.

정 교수는 이 책이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강단에 선 지 32년이 흐르고 낸 책입니다. 그 새 한국 경제는 몇 차례 위기를 극복하면서 큰 성장을 이뤘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제학 역시 많은 도전을 받으며 분석 방법과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예전엔 고시 준비용에 불과했던 경제학에 대한 수요가 이젠 크게 확산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정 교수는 “지금은 개인의 일상에서 기업의 전략과 국가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경제학적 접근 방법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제학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히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경제 현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지만 막상 경제학을 접하는 건 어렵다고 여기는 소비자가 많습니다. 개인이나 사회가 모두 경제 논리에 맞는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쉬운 경제학 서적을 꼭 내고 싶었습니다.”

그는 실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 지식을 대중에게 널리 보급시키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경제학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믿었다고 하네요. ‘열보다 더 큰 아홉’ ‘카론의 동전 한닢’ ‘만화로 읽는 경제학’ 등도 이런 배경에서 선보인 것이고요.

‘정갑영의 첫 경제학’은 경제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구성돼 있습니다. 매 장마다 기본적인 이론이 설명돼 있고, 현실 세계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인용돼 있죠. 어려운 전문용어는 가급적 피하고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것도 특징입니다.

정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가 건강해 지려면 국민 개개인이 경제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치권에서 인기 영합 위주의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할 때 결국엔 유권자 개개인이 이를 판단하고 비판해 골라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끝) /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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