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자별 충돌 007작전처럼 동시 관측…'다중신호 천문학' 새 장 열렸다

입력 2017-10-17 00:01  

한국 과학자들이 포함된 국제 공동 연구진이 중성자별의 충돌 과정에서 나오는 중력파와 전자기파를 한꺼번에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중력파가 블랙홀의 충돌이 아닌 다른 천체에서 검출된 건 처음이다. 과학계는 기존의 천체 관측 수단인 전파·광학 망원경 외에도 최근 그 실체가 확인된 중력파를 동시에 활용한 최초의 천체 관측 결과라는 점에서 천문학의 일대 혁명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서울대와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을 비롯한 한국 연구진과 미국항공우주국(NASA), 유럽천문대 등 45개국 연구진은 중력파 검출기인 미국의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LIGO·라이고)와 유럽의 버고(VIRGO)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성자별 충돌 결과로 나타난 중력파를 검출한 데 이어 같은 현상을 감마선 위성과 X선 위성, 천체망원경을 통해 확인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이처럼 하나의 천체 현상을 중력파와 감마선, X선, 가시광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시에 관측한 건 사상 처음이다. 관측에는 중력파 검출장치인 라이고와 버고를 비롯해 천문연의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 등 전 세계의 70개가 넘은 관측 시설이 동원됐다.

별 진화의 마지막 단계인 초신성 폭발에서 남는 별은 아주 밀도가 높고, 작게 수축한다. 이 별은 강한 자기장과 함께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중성자별’이란 이름을 갖는다. 중성자별은 보통 지름이 10~20㎞에 머물지만 질량은 태양보다 크다. 티스푼 하나로 뜬 질량이 10억㎏이상 나갈 정도로 무거운 별이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중성자별이 충돌을 하면 순간적으로 감마선 폭발이 일어난다. 이어 중성자별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순간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킬로노바’ 현상이 발생한다. 평소 어둡다가 갑자기 밝아지는 별인 ‘신성(격변 변광성)’보다 1000배 많은 에너지를 내뿜는다. 중성자별의 충돌 과정에서 나타난다고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만 예측해 왔다.

◆중력파 검출기 찍어준 자리 광학·전파망원경이 확인

지난 8월 17일 오후 9시 41분쯤(한국시간) 미국의 라이고 검출기와 유럽의 버고 검출기에 중력파(GW170817)가 포착됐다. 중력파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힘을 받아 가속도 운동을 할 때 발생하는 파동으로 2015년 9월 처음 포착됐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예언한 지 100년 만에 실체가 규명된 것이다. 중력파는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이 합쳐지거나 초신성이 폭발할 때 발생해 새로운 천문 현상을 규명하는 획기적인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올해 노벨물리학상도 중력파 검출에 기여한 물리학자 세 사람이 받았다.

중력파를 보면 천체의 질량을 추정할 수 있다. 충돌한 천체가 블랙홀인지 중성자별인지 추정된 질량만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날 100초간 지속한 중력파는 중성자별의 충돌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곧바로 전 세계 곳곳에 설치된 70개에 이르는 다른 전파·광학 천체 망원경들이 추적에 나섰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페르미 위성도 우연히 중력파 검출이 끝나고 2초 뒤 약 2초간 감마선 폭발 현상을 포착했다. 칠레 천문대들은 약 11시간 뒤 약 1억3000만 광년 떨어진 은하(NGC 4993)에서 중성자별의 충돌 현상을 포착했다. 라이고와 버고가 정확히 지목한 위치에서 중력파가 발생한 천체를 포착한 것이다.

임명신 초기우주천체연구단장(서울대 교수)이 이끄는 연구진도 KMTnet망원경과 호주에 설치한 이상각 망원경을 이용해 중력파가 발생한 지 21시간 뒤부터 광학 관측을 시작했다. 천문연이 지난 2015년 호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등 세 곳에 설치한 KMTnet은 밤낮없이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성균관대 연구진도 멕시코에 설치한 폭발관측및광과도현상탐색시스템(BOOTES-5) 망원경과 남극에 설치된 중성미자 검출기인 아이스큐브 뉴트리노천문대를 통해 관찰에 착수했다. NASA는 천체망원경보다 수백 배 먼 우주를 관측하는 찬드라X선 우주망원경을 동원해 9일 만에 중성자별 충돌에서 나온 X선 관측에 성공했다.

공동 연구진은 이런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중성자별이 충돌하면서 감마선 폭발에 이어 킬로노바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임 교수는 “광학 망원경을 통해 중력파 신호가 정확히 어떤 천체에서 나왔는지 확인한 첫 역사적 사례”라고 말했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의 이창환 부산대 교수는 “블랙홀 충돌이 아닌 전혀 새로운 천체로부터 중력파를 검출한 첫 사례로 중성자별의 핵입자 물리학적 상태를 규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70개 검출기·망원경 사전 모의 훈련해

전 세계 관측 망원경과 검출기들은 마치 잘 짜인 극본처럼 정확히 순차적으로 관측에 나섰다. 강궁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은 “중성자별 충돌에서 중력파가 검출되면 곧바로 추적에 함께 나서기로 사전에 미리 약속을 하고 사전 모의 훈련까지 실시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중력파, 감마선, X선, 가시광선, 적외선, 뉴트리노 입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주를 연구하는 세계 45개국 총 3500여 명 과학자의 협동 연구로 이뤄졌다. 국내에서는 한국중력파협력연구단과 한국천문연구원, 서울대 초기우주천체연구단, 성균관대 우주과학연구소 소속 38명의 과학자가 참여했다. 그만큼 많은 논문도 쏟아졌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관련 논문 2편을 소개했고 천문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천체물리학저널레터스’에 5편의 논문이 게재됐거나 투고된 상태다. 킬로노바의 특성을 밝힌 연구와 중력파가 발생한 은하 특성을 분석한 연구에선 한국 과학자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 한국 중력파연구협력단 과학자 14명이 포함된 라이고과학협력단은 중력파 관측 결과를 요약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발표했고 중력파로 측정한 거리와 이미 알려진 은하의 적색편이 값을 이용해 우주의 팽창률을 뜻하는 허블상수를 새롭게 구해 네이처에 소개했다.

과학계는 이번 성과를 계기로 광학과 전파, 중력파 신호를 활용해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규명하는 ‘다중신호 천문학’이 탄생했다며 환호하고 있다. 마치 의료영상장치로 사람 몸의 원하는 부위를 들여다보듯 가시광선, 중력파, 전자기파로 하나의 천문 현상을 해부하듯 파악하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실제 중력파 첫 관측에서 논문 투고, 공식 발표까지 61일밖에 걸리지 않아 장기 연구가 특징인 천문학 분야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이형목 교수는 “천문학의 오랜 난제이던 중성자별 충돌 현상이 한 번에 풀렸다”며 “다중신호 천문학은 우주론, 중력, 밀집 천체 등 분야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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