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진작가 테리 보더 개인전

입력 2017-10-17 18:12  

렌즈로 잡아낸 토이스토리 같은 상상력


[ 양병훈 기자 ] 동그랗고 납작한 과자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 이들에는 철사로 된 팔다리가 달려 있다. 한 과자가 두 팔을 벌리고 다른 과자에 ‘이리 와서 안기라’는 몸짓을 보낸다. 두 과자가 합치면 가운데 크림이 들어간 과자 샌드, 즉 ‘완벽한 한 쌍’이 완성된다. 미국 작가 테리 보더(52)의 사진 작품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사진)이다. 보더는 “두 과자가 포옹하는 모습은 철학자 플라톤의 책 《향연》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며 “두 사람이 한 몸으로 합쳐지고자 하는 갈망인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보더의 개인전이 지난 13일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보더는 의인화된 사물을 적절히 배치해 스토리를 만든 뒤 이를 사진으로 찍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로 유머를 담거나 가슴 찡한 내용, 또는 사회에 대한 촌평을 날리는 스토리다. 이번 한국 전시회는 그의 첫 해외 개인전이다. 사진 62점 등 총 90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보더는 주변의 흔한 소재를 활용한다. 빵, 계란, 과일, 수저, 손톱깎이, 립밤 등이다. 작품 ‘왕따 계란’을 보면 팔다리가 달린 흰 계란이 있고 그 앞에 나무 바구니가 놓여 있다. 바구니 안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이 칠해진 계란이 들어 있다. 겉에 ‘Colored only(유색인 전용)’라는 글이 쓰여 있다. 하얀 계란은 못마땅하다는 듯 바구니를 바라본다. 형형색색의 계란이 든 바구니를 선물하는 건 미국의 부활절 풍습이다. 보더는 이 작품에서 미국 내 인종차별의 어두운 역사를 고발하고 있다.

보더는 “하루나 이틀 정도 사물(오브제)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사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상상하게 돼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꾸민다”고 했다.

흔히 보이는 사물에서 스토리를 찾아내는 능력 때문인지 보더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묵직한 예술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동이라기보다는 팝아트에서 느껴지는 위트와 비슷하다. 오는 12월30일까지. 어른 1만원, 어린이·청소년 7000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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