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점령한 '도전의 아이콘'
세계 100대 CEO 중 1위
10대 고교생 부모에게서 태어나
우주과학자 외조부에게 영향 받아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해 승승장구
워싱턴포스트·홀푸드 등 인수
2018년 지구 도는 여행상품 팔 계획
창업 23년 만에 직원 38만명
'고객 만족' 넘어 '고객 집착' 강조
"4시간 내 고객 민원 해결책 내놔라"
베저스 머리 속에 '분기' 개념 없어
"이번 분기 실적 3년 전 결정된 것"
[ 뉴욕=김현석 기자 ]
‘제프 베저스는 가장 비전 있고 지칠 줄 모르는 우리 시대의 혁신가다. 스티브 잡스처럼 새 산업을 만들고 바꾸고 있다.’(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의 저자)
창업 23년 만에 아마존을 시가총액 4834억달러(약 540조원, 10월16일 기준), 직원 38만2400명 규모로 키운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추앙받는 기업가다. 2011년 애플 창업자 잡스가 사망한 뒤 ‘누가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이끌 것인가’ 하는 논쟁이 붙었을 때 IT매체 와이어드는 “베저스가 빌 게이츠와 잡스를 이을 인물”이라고 단언했다.
베저스는 2015년 ‘아마존이 성과·경쟁을 앞세워 직원들을 압박한다’는 뉴욕타임스 기사로 논란의 중심에 선 일이 있다. 세세한 것까지 챙기고 지시하는 냉혈한, 독재자란 평가도 있지만, 그가 세계를 바꾸는 기업가라는 데는 모두 동의한다. 타임지는 1999년 그를 ‘올해의 인물’,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은 2014년 ‘세계 100대 CEO’ 중 1위로 선정했다.
베저스의 철학은 △고객 집착 △도전정신과 혁신 △장기적 비전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의 기업가정신이 곧 아마존이다.
잡스와 비슷한 베저스
베저스의 성장 과정은 잡스와 닮았다. 10대 고교생 부모에게서 태어난 베저스는 부모가 1년 만에 이혼하자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외가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쿠바계 미국인 미겔 베저스와 재혼해 성이 베저스로 바뀌었다. 성장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외조부였다. 미국 국방부 연구소인 국방고등연구원에서 우주과학자로 일한 외조부는 베저스에게 우주와 과학에 대한 꿈을 불어넣었다.
2000년 우주탐사업체 블루오리진을 세운 베저스는 “5살 때부터 우주를 꿈꿨다”고 말했다. 과학에 소질을 보인 그는 영재학교에 다녔고, 미 프린스턴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졸업할 때 인텔, 벨연구소 등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선택했고 몇 년 뒤 월스트리트에 진출했다. 28살 때 퀀트 헤지펀드인 ‘D. E. 쇼’에서 최연소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연봉 100만달러의 꿈을 이뤘지만 어느 날 홀연히 사표를 던졌다. ‘인터넷 사용자가 매달 2300%씩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본 뒤 ‘온라인 판매’란 블루오션에 뛰어들었다.
베저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22년 전 아마존을 세웠을 때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매일 1987년식 쉐보레 블레이저를 타고 우체국에 갔다”고 회상했다.
‘고객 만족’에 만족 못해
“무슨 책을 샀나? 반품을 원하나? 해주겠다.”
지난 5월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인터넷협회 좌담회. 베저스는 사회자인 마이클 베커맨 인터넷협회장이 “2004년 아마존에서 처음 책을 샀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베저스의 농담은 제1원칙 ‘고객 만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를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이라고 부른다. 1994년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하고 유기농 식음료품 유통업체 홀푸드까지 인수한 건 고객이 원하는 모든 걸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베저스는 1998년 음반 판매를 시작할 때 “누군가가 온라인에서 뭔가 사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아마존이 됐으면 한다. 설령 그것이 아마존에 없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말이다”고 했다.
이런 철학은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비결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4월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가 발표되자 “아마존은 소비자가 점점 더 빠져들게 해 더 많은 물건을 사게 만든다. 소비자들은 이제 최저가를 찾는 걸 포기하고 그냥 편안히 아마존 가격을 수용한다”고 보도했다.
베저스의 지나친 고객 집착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베저스는 고객의 소리를 직접 듣겠다며 자신의 이메일 주소(jeff@amazon.com)를 공개했다. 이메일에서 문제를 발견하면 즉시 해당 부서에 메시지를 보내고, 이 부서는 통상 4시간 안에 원인 파악과 해결책을 준비해 보고해야 한다.
아마존 직원이던 리처드 하워드는 1998년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아마존은 베저스를 선지자처럼 숭상하는 컬트집단 같은 분위기”라며 “직원들이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목표를 늘 되뇌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직원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은 공산주의 집단농장 같다”며 “회사에 기여하지 못하는 직원은 이방인처럼 취급된다”고 말했다.
“크게 실패하라”
베저스는 도전 정신을 제2원칙으로 삼고 있다. 고객 집착과 연결된다. 베저스는 “고객 집착은 그냥 고객 불만을 듣고 바꾸는 게 아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걸 잘 모를 수 있다. 그들의 행태를 연구해 원하는 걸 찾아내야 한다. 그걸 하려면 도전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클릭 한 번으로 결제되는 ‘원클릭’, 연 99달러만 내면 이틀 내 무료배송을 해주는 ‘프라임’, 음성인식 스피커 에코를 통한 쇼핑, 프라임에어(드론배송) 등이 시작됐다.
베저스는 혁신을 위한 실패를 장려한다. 그는 지난해 4월 주주에게 보낸 서한에서 “아마존은 세상에서 실패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마존의 성공 뒤엔 수많은 실패가 숨어 있다. 2007년 시작한 모바일 결제 서비스 웹페이는 수억달러의 적자를 내 2014년 중단됐다. 2015년 시작한 아마존 데스티네이션(지역 호텔 예약 서비스)도 에어비앤비 등에 밀려 6개월 만에 손을 뗐다. 아마존 월렛(결제), 아마존 로컬 레지스터(결제), 아마존로컬(부동산정보) 등도 실패했다. 하지만 실패는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 아마존은 2014년 스마트폰 파이어폰을 내놨다가 1억7000만달러의 손실을 보고 철수했다. 그러나 베저스는 실패를 인정하고 개발팀을 격려했다. 이 팀에서 절치부심 끝에 만든 제품이 에코다.
아마존의 성공으로 세계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른 베저스는 개인적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2000년 우주탐험회사인 블루오리진을 세워 내년부터 지구궤도를 11분간 도는 여행상품을 팔 계획이다. 재활용로켓을 통해 수백만달러의 여행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려 한다. 2013년 개인 돈 2억5000만달러를 들여 인수한 워싱턴포스트는 아마존의 고객 취향 분석 기술을 접목해 웹사이트 방문자 수를 크게 늘렸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잘 적응한 신문으로 평가받던 뉴욕타임스를 넘어섰다.
장기적 비전 갖고 경영하라
아마존의 매출은 2007년 148억달러에서 지난해 1359억달러로 10년 만에 열 배가량으로 불어났다. 이익은 보잘것없다. 2012년, 2014년엔 당기순손실을 내기도 했다. 베저스는 1997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음만 먹으면 이윤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지금으로선 어리석은 일이다. 현재 이윤으로 남길 수 있는 부분을 미래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저스의 머릿속에 ‘분기’란 개념은 아예 없다. 그는 지난 5월 좌담회에서 “어떤 사람이 ‘이번 분기 훌륭한 실적을 내 축하한다’고 하면 속으로 ‘이번 분기 실적은 이미 3년 전에 결정돼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저스는 임직원에게 향후 2~3년이 아니라 5~7년을 보고 일하라고 주문한다. 그는 “장기적 비전을 가지면 뭘 해야 하고 어디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할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마존이 2002년부터 선도적으로 투자해 2006년 선보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현재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인공지능(AI) 스피커에서도 구글 애플 등에 월등히 앞선 건 모두 장기적 비전을 갖고 경영해온 결과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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