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소유권 없으면 자유도 얻을 수 없다

입력 2017-10-18 18:48  

리처드 파이프스 《소유와 자유》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사적 재산 소유권이 없으면 자유도 없고, 자유가 없으면 경제성장이 있을 수 없으며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평등이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가치다. 사람마다 기술, 관심, 근면함이 다르기 때문에 소유를 평등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평등은 곧 무너진다.”

리처드 파이프스 전 하버드대 교수(94)는 폴란드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갔다. 그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왜 잘 살고, 러시아와 그의 고국인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왜 못 사는가에 의문을 가졌다. 이런 궁금증이 《소유와 자유》(1999년 출간)를 쓴 동기가 됐다. 그는 소유권 보장이 자유를 증진시킨다는 가설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역사적 사례를 들어가며 사유재산 제도가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로 진화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을 밝혀내려 했다. 그는 “소유욕은 보편적 현상으로 동물은 물론 아이와 어른, 원시인, 문명인 등 구분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며 “이는 자기 보존의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적 소유가 인정됐던 아테네인들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울 수 있던 것도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영국과 러시아를 비교하며 소유권과 자유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고찰했다. 유럽 중세 말기의 도시 발전은 사적 소유권 확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상업과 무역을 통해 부(富)를 축적한 도시민은 왕과 귀족, 성직자들로부터 토지의 특권을 획득하고자 했다. 이들은 법 제정에 참여하고 그것을 집행할 권한을 추구했다.

영국, 소유권 인정으로 의회주의 발달

영국에선 16세기 튜더왕조 시절 자작농을 우대하기 위해 왕이 소유하던 대규모의 영지와 교회 토지를 평민들에게 나눠줬다. 이로 인해 소지주계급이 생겼다. 새로운 지주계급을 중심으로 한 청교도혁명, 명예혁명 등을 통해 영국에선 왕권이 약화되고 의회주의가 발달했다. 파이프스는 “시민들의 부가 증가하면서 왕은 나라 운영에 필요한 돈을 이들에게 요구했고, 그 대가로 참정권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재산권이 잘 지켜짐에 따라 영국 사람들은 경제적인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었고, 기업가 혁신으로 이어졌다. 이게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됐다”는 게 파이프스의 분석이다. 그는 “재산권 보호가 경제 혁신과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파이프스는 영국과 달리 러시아가 시민권과 자유를 발전시키지 못한 주요 원인을 16세기 모스크바 공국이 사유 토지를 없앴기 때문이라고 봤다. 모스크바 공국은 전제 군주가 토지 등 모든 것을 소유하는 체제를 유지했다. 전근대 러시아는 귀족이라도 군주에 대한 충성과 봉사를 조건으로 한 토지 보유만 조건부로 인정했다. 18세기 토지의 사적 소유제도가 도입됐지만 대다수 러시아인은 농지를 보유하지 못했다. 일반 시민의 정치적 권리는 아예 인정되지 않았다. 파이프스는 “세습군주는 소유하고 있던 막대한 토지에서 지대를 직접 얻을 수 있어서 세금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민들에게 재정적으로 기대지 않아도 됐고, 시민권을 확대하거나 의회 제도를 발전시킬 필요도 없었다”고 분석했다.

평등주의 입각한 복지, 자유 위협

파이프스는 “20세기 공산주의 체제 소련에선 사적 소유가 없었기 때문에 생산 유인이 부족했고, 시민들은 최소한의 생산물만 만들어냈다”며 “이는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됐고, 사회주의 경제는 실패로 귀결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적 소유를 없앨 경우 모든 사회악이 해결될 것이라는 사회주의 이상은 환상임이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공산주의 붕괴로 소유권에 대한 가장 위험한 도전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동일한 보상으로 정의되는 평등주의에 입각한 복지정책이 오늘날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파이프스는 1965년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위대한 사회’를 비롯한 미국의 복지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노인 및 저소득층 의료 보장제도 도입 등 복지를 대폭 확대하는 ‘위대한 사회’ 정책이 시작된 1965년부터 1993년까지 복지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미국의 빈곤 인구 비중은 12.5%에서 오히려 15%로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미혼모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미혼모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고도 비판했다.

그는 “수혜자가 긴급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는데도 이들에게 아낌없이 주겠다는 복지정책은 소유의 원칙에 해가 될 뿐만 아니라 국가 파멸로 치달을 뿐”이라며 “복지제도는 의존성을 키우고 의존성은 가난을 키운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주적 사회복지 정책은 공산주의처럼 폭력적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공산주의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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