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색의 문화사

입력 2017-10-19 18:22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인도 사람들은 ‘카스트’ 신분제를 ‘바르나(varna)’라고 부른다. 계급을 뜻하는 이 말에는 ‘피부색’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가장 높은 브라만(사제 계급)은 하양, 그 다음 크샤트리아(귀족이나 군인)는 빨강, 바이샤(상인·농민)는 노랑, 수드라(원주민 노예)는 검정으로 구분한다.

최고 계급의 상징이 흰색인 것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그중 하나는 고대에 이 지역을 정복한 아리아인의 피부색이 원주민보다 하얗다는 이유에서 흰색을 최고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들이 인더스 강 유역에 정착한 뒤 신분제를 확립한 과정과 맞닿은 이론이다. 다른 하나는 흰색이 빛과 순수를 상징하는 고귀한 색이라는 것이다.

색은 인간의 인식 체계를 반영한다. 특별히 색채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검은색은 어둠, 빨간색은 열정, 녹색은 숲과 연계한다. 이처럼 머릿속에 고정관념으로 박힌 빛깔을 기억색(memorial color)이라고 한다. 흔히들 노랑 주황 빨강 계열은 따뜻한 색으로 기억한다. 파랑이라면 차가움을 연상한다.

그러나 연령과 계층에 따라서는 색감이 달라지기도 한다. 붉은빛 하면 어린이들은 해나 불, 청년들은 정열, 장년들은 경고표시를 떠올린다. 국가별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의복과 예식 등에 쓰이는 색상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은색은 어둠과 공포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기지만 법관의 법복처럼 공정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덴마크 왕립도서관 같은 건축물이나 첨단 전자기기의 까만 디자인도 고급스럽다. 미국 정치권을 상징하는 빨간색(공화당)과 파란색(민주당)은 이념과 가치를 드러내는 색상이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노랑을 황제의 색으로 여겼다. 부의 원천인 땅과 황금을 나타내는 색이기 때문이다. 경사스런 날에는 황금색과 빨간색을 조합해 ‘복(福)’을 표시했다. 서양에서는 노랑이 경계와 멸시를 상징하는 색이었다. 중세 화가들은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옷을 노란색으로 칠했다. 독일 나치스는 유대인에게 노란 ‘다윗의 별’ 배지를 붙이도록 했다.

로마에서는 자주색이 황제의 색이었다. 카이사르와 네로는 자신 외에 자주색 옷을 입는 자를 처벌했다. 당시 자주색은 염색하기 어렵고 귀했다. 자주색 염료 1g을 얻는 데 지중해에 서식하는 고둥 1만 마리가 필요할 만큼 비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황제를 상징하는 자주색 넥타이를 매고 등장했다는 보도가 잇달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황제색이 노랑이라고 해설까지 하던 언론이 하루아침에 자주색이라고 말을 바꾸니 민망하기 그지없다. 서구 언론이 로마를 연상하며 내보낸 보도를 여과 없이 옮긴 결과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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