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에선 관련 제도를 운영 중인 유럽의 예를 들며 수년 전부터 근로자의 경영 참여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독일 등 19개 유럽국가에서는 근로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를 통해 공공기관과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의 목소리를 기관 경영에 반영해 국민에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주된 도입 근거로 꼽힌다. 노사가 경영 현안을 함께 논의하고 공동으로 책임을 지기 때문에 기업의 생산성이나 노사관계 안정에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경제계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이 자칫 기업의 자율성과 경쟁력 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노동이사제의 정착은 향후 민간부문으로의 전면적 확산을 위한 수순으로 인식되고 있어서다. 이들은 근로자 대표의 경영 참여가 의사결정 속도를 늦춰 기업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이사제가 정착된 독일에서도 기업인 중 절반 이상이 ‘노조 대표의 경영 참여는 방해가 된다’고 응답했다는 점도 근거로 든다.
나아가 노동이사제는 ‘사회적 경제’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독일 등 유럽에선 적용이 가능하지만, ‘주주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한국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설사 공공기관으로 도입 대상을 한정하더라도 공기업의 방만경영과 체질개선이 시급한 상황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찬성 - 노동계 경영참여는 '노사협력' 구현…사측의 우월적 지위 남용 사라질 것
배제·억압의 노사관계, 참여·협력으로 정상화해야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경로에 들어서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소득주도 성장’에 시동이 걸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추동함으로써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데 나서고 있다. 이는 과거 주력산업의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세금을 깎아주면서 가계부채와 국가채무로 내수를 지탱하던 ‘부채주도 성장’과 결별하는 의미도 있다. 이런 이행기에 비용과 이익의 재분배를 둘러싸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마찰과 갈등을 최소화하고 상생과 협력으로 나아가는 장치가 바로 노동이사제를 근간으로 하는 노동의 경영 참여다.
헌법상의 경제 질서인 사회적 시장경제의 출발점은 인간은 경쟁도 하지만 협력도 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헌법 제119조2항은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두 용의자가 ‘딜레마’ 상황에서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면 ‘협력잉여’를 실현하고 이를 공평하게 나눌 수 있다는 설명이 있다. 헌법에 의거하든, 경제이론에 기초하든 노사가 효율적이고 공평한 협력을 구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바로 노동이사제다.
노동이사제는 ‘노동’ 측에도 권한(의사결정 참여)에 부합되는 책임(실적 개선)을 부여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에서 최대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노사협력이 필수적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변칙적으로 진행되고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가 없었던 일로 지워진 현실은 오랫동안 배제됐던 ‘노동’을 새 정부가 대신하려는 성급한 시도가 초래한 안타까운 결과다.
노동이사제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갑질’과 ‘오너 리스크’에 대한 근본 처방이 될 수 있다. 갑질의 출발점과 뿌리가 노동억압적인 기업문화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이사제를 통해 노사가 대등한 관계에 서게 되면 자연히 ‘노동존중’ 문화가 확산되면서 우월적 지위의 오남용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끊이지 않는 비자금 스캔들 등 기업과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범죄행위 차단을 국가에만 맡기는 것은 전관예우와 정경유착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도 노동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4차 산업혁명의 원조격인 독일이 ‘인더스트리 4.0’을 시작하면서 노동조합을 관련 정책 논의에 참여시키고 ‘노동 4.0’에 관한 보고서를 채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처럼 노사갈등이 심한 나라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것은 갈등을 오히려 증폭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반론이다. 하지만 이는 인과관계를 전도시킨 주장이다. 독일의 경험에서 볼 때 노사협력은 노동이사제의 결과이지 전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노사상생에 대한 당위론적 요구는 높았지만 특히 그것이 경제계에서 제기될 때는 노동이 순종하는 관계를 내용으로 했기 때문에 동상이몽에 지나지 않았다. 노동이사제는 배제와 억압의 노사관계를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로 정상화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고 ‘사람 중심’의 사회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반대 - 노조 힘 키워 공기업 경영 장악 우려…구조조정 등 개혁 추진 어려워져
노사협의회 등 기존 제도 통한 경영참여가 바람직
노동이사제를 정부가 공식 추진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동이사제는 1970년대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일부 도입됐는데 노동조합 대표가 아니라 노조가 추천하는 외부 전문가들이 기업 활동을 감시하는 게 주목적이다.
독일은 노동자가 2000명 이상인 기업은 노사가 참여하는 ‘감독이사회’를 구성해 ‘경영이사회’의 주요한 결정을 감독하도록 하는 ‘공동결정제’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노동자들은 기업 경영의 실질적인 결정권은 갖고 있지 않다. 기업의 의사결정만 더디게 하고 경영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한다는 비판도 대두된다. 최근 유럽의 노동자 경영 참여는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일부 유럽 국가는 이 제도를 점차 축소·폐지하는 추세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 노동이사제가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해서 노사관계의 역사와 문화, 법 체계가 다른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독일은 개인의 자유로운 창의와 사회발전 원칙을 결합시킨 사회적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헌법 제119조 제1항에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존중을 기본으로 한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실현수단으로서 경영자와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우리 헌법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이념이다.
노동이사제 도입은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공기업 경영이 장악당할 우려가 크다. 공기업 개혁이나 구조조정이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공기업 지배구조를 후진적으로 만들 가능성도 높다. 주식회사의 지배구조에서는 주주·경영자·채권자·근로자·소비자·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 수많은 이해관계자 중 유독 근로자만이 이사회에 그들의 대표를 보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만일 이것을 허용한다면 소비자, 지역사회 대표 등도 이사회에 진출해야 된다는 논리가 나온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이익추구 조직이 아니라 사회적 공공기관이 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기관장 또는 경영진이 낙하산 인사이거나 이념적으로 친노조 성향일 경우 공공기관의 특성상 보신주의를 택해 사사건건 노조에 끌려다닐 가능성이 많다. 공기업은 고통 분담 차원의 개혁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은데 노조 동의를 받지 못하게 되면 경영 악화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노동이사제가 민간으로 확산되면 자본시장 위축 등 매우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기업에서는 신속한 경영판단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 근로자 이사가 노조와의 의견 수렴과정을 거치면서 그만큼 기업의 의사결정이 더디게 진행될 우려가 있다. 이런 노사관계 구조와 환경에서는 재정 위기가 닥치더라도 노조와의 고통분담 차원의 개혁은 거의 이뤄지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7년 3월13일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근로자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근로자와 사용자 간에 노사협의회를 통해 근로자의 복지 증진과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존 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바람직한 근로자 경영 참여를 모색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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