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수사 편의주의" 비판도
KAI·국정원 수사 16건 영장
'구속사유 불분명' 7건 기각
'적폐수사' 오래돼 증거 부족
진술 의존…'잡아넣기'에 급급
영장전담판사 압박 기류도 보여
[ 고윤상/김주완 기자 ] “적폐라고 규정만 하면 무조건 구속하는 분위기입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끄는 거침없는 ‘적폐수사’ 행보를 두고 법조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구속 수사 원칙’을 흔들고 ‘인권 수사’라는 시대적 조류에 역행한다는 비판이다. 최근 3개월(8월1일~10월20일) 동안 ‘적폐’라며 청구한 영장의 44%가 법원에서 기각됐다. 지난해 평균 영장기각률 17.9%의 두 배를 웃돈다. 검찰 고위직 출신 한 변호사는 “인권도 불구속원칙도 적폐수사 앞에선 뒷전이라는 건지, 훗날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KAI·국정원 사건 16건 중 7건 기각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가정보원에서 국내 정치공작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20일 새벽 기각했다. 같은 날 ‘관제 시위’를 주도한 혐의의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총장에 대한 영장도 기각됐다.
적폐수사 관련 영장 기각률은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8월부터 한국항공우주산업(KAI)·국정원 수사를 하면서 16건의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 중 기각이 7건에 달한다. 국정원 정치공작의 핵심으로 검찰이 지목한 추 전 국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법원은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부실 수사를 지적했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한밤중에 긴급체포까지 한 추 전 국장의 구속영장 기각은 말 그대로 망신살”이라고 평했다.
지난 6월에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됐다. 당시 검찰은 세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다가 무리수라는 안팎의 비판에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터폴에 적색수배해 긴급 압송까지 하고도 죄를 입증하지 못해 여론을 의식한 ‘마구잡이 식 수사’라는 시각이 많았다.
‘적폐청산’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기조에 발을 맞추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커진다는 시각이 많다. 한 현직 검사는 “검사에게는 재판에서 유죄를 받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일단 잡아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무조건 잡아넣고 보자는 식의 검찰 행태에 공포심을 느끼는 법조인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수사편의 위해 긴급체포 등 남발”
과거의 일을 뒤지는 ‘적폐 수사’ 특성상 증거가 부족한 점이 영장 남발의 사유로 거론된다. 구속영장 청구로 피의자들을 압박하고, 참고인과 피고인 진술로 범죄 사실을 구성해야 하는 어려움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의 거침없는 질주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취임 이후 강조하고 있는 ‘인권 수사’에 역행한다. ‘긴급체포→영장청구’라는 최강의 ‘인신 구속 카드’를 수사 편의를 위해 남용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기각할 테면 또 해보라’는 식의 영장 재청구도 빈번하다. 한 변호사는 영장을 심사하는 전담 판사를 법정에서까지 압박하는 기류도 보인다고 우려했다. 영장 재청구는 피의자가 기각 결정을 받기 전까지 여러 차례 ‘임시 구속’ 상태에 다시 놓이기 때문에 반인권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고윤상/김주완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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