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가 만든 탈원전 '무리수'…성급하게 밀어붙이다 '퇴짜'

입력 2017-10-20 18:42   수정 2017-10-21 06:15

신고리 원전 공사 재개

제동 걸린 문재인 정부 에너지정책
文캠프 원전 비전문가들이 공약 작성 주도
신고리 5·6호기 중단 불발은 예견된 결과
당·정·청 '탈원전파' 책임론 불거질 가능성



[ 이태훈 기자 ]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중단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정부는 지난 5월 출범 직후 ‘탈(脫)원전’을 에너지 정책 방향으로 발표하면서 신고리 5·6호기 중단을 1호 과제로 제시했다. 원전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환경운동가 등 원전 비전문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공약을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신고리 원전이 지어지는 지역에서도 수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 결론을 내리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공론화위는 3개월간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시민참여단 대상 네 차례의 공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공사를 재개하라’고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1호 과제부터 ‘민의(民意)’에 막힌 셈이다.

◆처음부터 예견된 결과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방침이 ‘퇴짜’를 맞은 것은 처음부터 예견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공약 단계에서부터 비전문가 주도로 짜여진 어설픈 정책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해당 정책은 환경단체 출신인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과 반핵운동가인 김익중 동국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과 교수가 주도했다. 이들은 지난 6월 새 정부 인수위원회 격이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며 외부에 알려졌다.

“비전문가가 탈원전 공약을 만들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국정기획위는 “사실과 다르다”며 다른 전문가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김진우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연세대 특임교수), 안남성 전 에너지기술평가원장(한양대 초빙교수) 등이었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맡고 있는 백운규 당시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도 포함돼 있었다.

이 중 원전 전문가는 김진우 전 원장 한 명이다. 하지만 환경단체가 김 전 원장을 ‘친(親)원전 세력’으로 규정해 퇴출을 요구했고 결국 공약 작성에서 배제됐다. 그는 6월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공약을 신문을 보고 알았다. 환경운동가가 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다”고 했다.

‘비전문가가 짠 허술한 공약’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정책으로 밀어붙였다. 한 원전 전문가는 “현실 타당성 검증 없이 무리하게 추진할 때부터 여론의 벽에 부딪혀 중도 하차할 것이란 점은 처음부터 예고된 결과”라며 “3개월의 시간과 시공사 보상비용 1000억원만 허공에 날리게 됐다”고 말했다.

◆탈원전 예정대로 추진한다지만

정부는 20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로 공론화위 권고안이 나왔지만 그 외의 탈원전 정책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 금지, 노후 원전 조기 폐쇄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일각에선 공론화위 조사에서 원전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53.2%로 절반을 넘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무관하게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힘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 중 가장 상징성이 큰 것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다. 환경단체들은 “문 대통령이 임기 내 확실하게 탈원전 의지를 보여주려면 공정이 30% 가까이 이뤄진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탈원전 1호 공약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무산되면서 급격한 탈원전 정책은 펼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다.

정부와 여당 내에서 탈원전을 주도한 이들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3개월의 공론조사 결과 6 대 4라는 비교적 큰 차이로 건설 재개 의견이 많이 나왔다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국민 의견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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