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부족하자…조선 생태계가 무너진다

입력 2017-10-22 20:52   수정 2017-10-23 06:07

대형조선사 "도크가동률 올려라"
수익성 낮은 배 입찰도 '기웃'
중소형사 "가격 경쟁서 밀려" 반발



[ 안대규 기자 ] 일감 부족에 시달리는 대형 조선사들이 중·소형 조선사의 일거리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도크를 놀리지 않고 돌리기 위해서다. 중형 조선사는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2~3년 전 ‘수주절벽’이 올 들어 ‘일감절벽’으로 이어지면서 대형 및 중·소형 조선사 간 사업 영역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수에즈막스(재화중량 13만~16만t)와 아프라막스(8만~12만t)급 유조선을 17척 수주했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9월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두 척, 올해 5월 동급 유조선 네 척을 수주했다. 수에즈막스급 유조선의 일종인 석유화학운반선(PC선)도 작년부터 올해까지 다섯 척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작년 10월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네 척을 수주한 데 이어 아프라막스급 유조선도 두 척 수주했다. 작년부터 성동조선해양과 경영 협력을 시작했지만 아직 공동 수주에 나선 사례는 없다.

고부가가치 선종인 32만t급 초대형유조선(VLCC)을 주로 건조해온 두 조선사가 상대적으로 작고 수익성이 낮은 선종을 대거 수주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여기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인 현대미포조선은 최근 정부의 어업지도선 입찰에도 관심을 보이며 중소형 조선사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1500t급 어업지도선은 보통 한진중공업, 성동조선, STX조선해양, 대한조선 등 중소형사도 관심을 갖지 않던 작은 배다. 현대미포조선 관계자는 “워낙 일감이 없다 보니 그동안 수주하지 않던 선종에도 관심을 두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일감을 두고 대형 및 중·소형 조선사가 동시에 눈독을 들이면서 조선업계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형 조선사 측은 “작은 선종이라도 수주해 도크를 채우지 못하면 인력을 감축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5000여 명의 유휴인력이 발생해 울산의 두 개 도크와 군산조선소 문을 닫았다. 삼성중공업 역시 일감이 부족해 전체 여덟 개 도크 중 두 개의 가동을 중단했다.

중소 조선사는 대형사와 가격 경쟁을 벌여 이겨낼 수 없는 구조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반응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조선업 생태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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