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밤 설치며 호텔서 퍼팅연습 했죠"
스윙 바꾸고부터 샷 흔들려 긴 슬럼프 빠져
가족·팬들 응원 덕분에 골프 포기 않고 버텨
잃었던 자신감 찾아…'명예 전당' 꿈 이룰 것
[ 최진석 기자 ]
“대회 기간에 긴장돼서 잠을 설쳤어요. 8년 만에 우승하면서 자신감을 얻어 기쁩니다.”
3025일 만의 우승이었다. 2009년 7월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통산 2승을 따낸 지은희(31·한화)는 이후 8년3개월간 침묵했다. 지난 22일(이하 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스윙잉 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에서 마침내 우승을 결정짓자 지은희는 울음을 삼켰다. 그는 “평소 우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며 “너무나 감격스러워 울컥했는데 겨우 참았다”고 말했다.
지은희는 23일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는 26일 개막하는 사임다비 LPGA 말레이시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에 막 도착한 지은희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긴장한 탓에 2라운드, 3라운드 끝나고 잠을 설쳤다”며 “자기 전에, 잠이 안 올 때 호텔 방에서 퍼팅 연습을 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우승으로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았다”며 “좋은 흐름을 계속 이어가면 또 한 번 우승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스윙 바꾸자 찾아온 슬럼프
지은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었을 때 위기가 찾아왔다. 2009년 시즌이 끝난 뒤 동계훈련하면서 스윙을 바꾼 것이 발단이었다. “그때까지 저는 페이드만 구사할 수 있었어요. LPGA에 가보니 코스도 길고 난도도 높아 드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스윙을 바꿨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 스윙을 잃어버렸죠.”
밤낮없이 연습했지만 공 컨트롤에 문제가 있었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 처음엔 드라이버가 말썽이었고 그다음엔 아이언이 속을 썩였다. 지은희는 “연습장에서 잘 맞다가도 실전에 가면 컨트롤이 안 됐다”며 “이전 스윙까지 섞이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성적이 곤두박질친 건 아니었다. 그는 2008년 LPGA 데뷔 후 지금까지 한 번도 투어 카드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저 타이틀까지 맛본 지은희에겐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다. 그는 “더 이상 우승하지 못하자 회의감이 밀려 왔다”며 “골프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지만 가족과 친구, 팬 들이 ‘더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끈질긴 연습으로 슬럼프 극복
지은희는 2015년 시즌을 끝으로 5년간 함께한 스윙 코치와 결별하고 지난해부터 혼자 연습했다. 지난 추석 연휴 때도 한국에 머물며 휴식 대신 훈련을 했다. 이때 한화골프단의 김상균 감독이 지은희를 도왔다. 지은희는 “다운스윙 때 힙턴이 너무 빨라 손이 늦게 따라오는 습관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스윙 타이밍을 상체로 맞췄다고 했다. 그는 “김상균 감독과 함께 상의하면서 스윙을 교정한 게 큰 도움이 됐다”며 “지난 대회에선 페이드와 드로를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화골프단은 한창 성적이 좋지 않던 2013년 먼저 후원을 제의했다”며 “한화의 꾸준한 지원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미국 투어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이번에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은희의 장기는 정교한 퍼팅이다. 지난 대회에서도 그는 장거리 퍼터를 컵에 쏙쏙 집어넣었다. 지은희는 “가장 고민이던 아이언 샷에서 해결점을 찾은 것 같다”며 “아직은 스윙을 매번 생각하면서 쳐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도록 더 연습하겠다”고 다짐했다.
LPGA투어 10년차인 지은희는 “이번 우승으로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미국에 있는 여동생이 대만 한국 미국에서 함께 축하 파티를 했다”며 “앞으로도 이 흐름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최종 목표는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이라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달라”고 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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