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계 종업원 출근 안해 식당 영업 차질
마트는 방문객 줄어 매출 감소
불법체류자 고용시 '벌금폭탄' 우려
일부선 합법이민자로 바꾸기도
[ 뉴욕=김현석 기자 ] 미국 뉴저지주(州) 버겐카운티의 한 한인 식당은 지난 9월 중남미계 종업원이 집단으로 출근하지 않아 이틀간 문을 열지 못했다.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이 불법체류자 단속에 나선다는 소문이 돌자 체포될까 두려워한 중남미계 직원들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주변의 한인 업소 상당수도 같은 이유로 영업하지 못했다. 뉴욕 롱아일랜드의 한 한인 마트는 최근 중남미계 고객 방문이 줄면서 월 매출이 5%가량 감소했다. 불법체류자 단속이 늘어나자 중남미계 고객들이 마트에 발길을 끊어서다.
중남미계 직원을 주로 고용해온 한인 자영업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중남미계 종업원이 이탈해 영업을 못 하는가 하면 불법체류자 채용이 발각돼 엄청난 벌금을 맞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업소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종업원을 합법 이민자나 현지인 등으로 교체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워싱턴이그재미너에 따르면 불법체류자 단속을 맡고 있는 ICE의 토머스 호만 국장대행은 지난 17일 워싱턴DC 헤리티지재단에서 연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직장에 대한 이민 단속을 강화했지만 앞으로 더 확대할 것”이라며 “직장 이민 단속을 현재보다 다섯 배까지 늘리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으로 취업하는 이민자는 추방될 것이며, 이들의 체류 신분을 알고 채용한 고용주도 강력히 처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CE는 지난 2월과 5월, 8월, 9월 미 전역에서 대규모 불법체류자 체포 작전을 벌였다. 올 상반기에만 6만6000여 명을 체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40% 증가한 것이다. 특히 단속은 불법체류자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9월29일 필라델피아 연방법원이 노동허가증을 갖고 있지 않은 이민자 수천 명을 고용한 혐의로 벌목업체 애스프런드 트리 엑스퍼트에 역대 최고액인 9500만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자영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한인 피해가 우려된다. 한인 이민 1세대는 언어적 제약 등으로 주로 음식점, 세탁소, 식료품점, 미용업소 등을 운영해왔다. 자녀인 2세대에선 전문직 종사자가 늘고 있지만, 미국 인구센서스를 보면 한인들은 50%가량이 여전히 자영업을 하고 있다. 뉴욕 총영사관 관계자는 “음식점, 세탁소, 식료품점 등 인건비 지출이 많은 업종을 중심으로 급여가 싼 중남미계 종업원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미국 현지 보도를 보면 이들 중 30~60%가 불법체류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서류 미비자 수는 1100만 명으로, 그중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 중남미계가 770만 명에 달한다.
한인 정치 참여 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동석 시민참여센터(KACE) 상임이사는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정책은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함께 극우주의자로 꼽히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수석정책고문이 주도하고 있다”며 “불법체류자가 미국에 발을 못 붙이게 하기 위해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밀러의 발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정책 탓에 자영업에 종사하는 한인 동포가 큰 타격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체류자 단속을 위해 ICE 공무원을 1만 명 증원하는 등 새로운 이민정책을 만들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불법체류자 단속 공무원 증원, 영주권(그린카드) 제도 재검토 등을 골자로 한 새 이민정책 초안을 지난 8일 의회에 보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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