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봉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 회동을 했다. 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측이 불참해 반쪽 행사가 됐다. 청와대가 민주노총 산하 일부 산별노조만 선별해 초청하자 민주노총이 반발했다. 게다가 민주노총은 불참 소식과 유감 표명을 청와대에 통보하는 대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번 회동은 청와대가 노동계에 요청해 이뤄진 자리다. 노동계와 정부의 접촉 창구 역할을 하던 고용노동부나 노사정위원회는 실무에서 배제됐다. 일각에서는 그래서 매끄럽지 못한 모습이 연출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노동계 생리를 잘 알고 협상 경험을 갖춘 부처 실무자들이 참석 대상과 의제 등을 조율했으면 어땠을까.
이번 회동에서는 고용부나 여당이 당혹스러워할 만한 장면도 나왔다. 그동안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과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대통령이 직접 노동계와의 대화에 나서라”는 한국노총 요구에 “그런 식으로 조건을 걸면 안 된다”며 완곡한 거부 의사를 밝혀 왔다. 하지만 이날 문 대통령은 흔쾌히 노·사·정 첫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난제 해결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모습은 시원시원해 보인다. 하지만 노동계엔 ‘앞으로는 청와대가 우리 협상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가 노동현안을 직접 해결하겠다며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법을 고치는 대신 행정해석을 바꿔 시행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고용부는 물론 법 개정 범위를 놓고 한창 협상을 벌이던 여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주요 정책을 청와대가 주도하고 부처 대신 외부 위원회를 활용하는 일이 잦다 보니 ‘부처 패싱(passing)’ ‘국회 패싱’ 논란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노동 분야처럼 사회 갈등을 다루는 사안들은 ‘시스템을 통한 해결’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와대가 나서면 노동계의 요구 수준은 더 과도해질 수밖에 없고 부처 행정력은 약화될 소지가 크다. 민주노총이 지난 24일 그랬듯, 노동계는 요구가 틀어지면 그 책임도 노사정위원회나 부처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직접 돌릴지도 모른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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