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동성 상실·사회적 갈등 증폭"
창의·혁신은 경쟁에서 나와
전반적인 제도 개선 시급
GDP대비 복지예산 비중
현재 복지제도만으로도 OECD 평균에 근접할 것
대기업 정규직 과보호 심각
저성과자 해고도 필요
[ 주용석 기자 ] “사회 전반의 제도 개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한국은 일본이 1990년대 겪은 것보다 더 빠른 하락을 경험하고 장기침체의 늪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싱크탱크 ‘국민성장’ 소장을 맡아 정부 정책을 설계한 조윤제 주미대사가 우리 사회에 쓴소리를 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바다를 건너기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신간 《생존의 경제학》(사진)을 통해서다. 조 대사는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사회가 소득분배 악화, 경제 역동성 상실, 국가 지도부와 정부의 단기적 시계(視界), 세대 간 갈등에 외교적 위기까지 내우외환에 직면했다”며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설계자’답게 이 책에는 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부분이 많다. 소득재분배 정책을 지지하고 재벌개혁을 강조하는 게 대표적이다. 조 대사는 “분배 구조 악화에 대한 적절한 대처 없이는 우리 경제와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 방안을 지지했다. 정부의 공무원 증원과 관련해서도 “경제 규모가 커지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정부 행정 서비스의 양과 질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며 “‘작은 정부’의 장점만 강조할 수 없다”고 옹호했다.
그렇다고 정부 정책을 마냥 지지하는 건 아니다. 조 대사는 “현재 복지 프로그램만으로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비중은 장기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근접해갈 것”이라며 과도한 복지 지출 확대를 경계했다. 한국의 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이 2005년 6.5%에서 2014년 10.4%로 3.9%포인트 증가하며 OECD 회원국 평균 상승률인 2.2%포인트를 크게 웃돌았다고 지적하면서다.
노동개혁도 어렵지만 이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조 대사는 “대기업 근로자의 높은 임금 수준과 낮은 고용 유연성은 대기업이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빠르게 이동시키는 한 요인을 제공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대해선 “정규직의 양보 없이 비정규직이 줄고 임금 격차가 줄어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노동적폐’로 지목하며 폐기한 양대 지침 중 하나인 ‘저성과자 해고’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조 대사는 개혁을 위한 방법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했다. 그는 “사측은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노측은 고용 유연성을 수용하고, 정부는 사회 안정망을 제공하는 식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며 “사회적 대타협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 성장’이란 단어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대신 혁신과 경쟁을 강조했다. 그는 “혁신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정부가 만들어줄 수 없다”며 “모든 지대(기득권) 추구를 없애고 각 분야에서 실질적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혁신이 생겨난다”고 했다.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 “중국이 따라오는 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을) 지금보다 더 빨리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정치권에는 협치를 당부했다. 조 대사는 “어떤 정부든 목표와 정책의 60~70% 정도만 이루고 나머지 30~40%는 야당과 그 지지자들이 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정치관행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을 언급하며 대통령 중임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국가 혁신과 변화를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정도의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개혁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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