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100세 맞은 노란 고무밴드 '원조' 일본기업

입력 2017-10-26 07:31   수정 2017-10-26 10:56


일본은 세계적으로 장수기업이 많은 국가 입니다.

옛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4년 현재 한국에는 100년 이상 된 기업이 우리은행, 동화약품, 보진재 등 8개에 불과한 반면 일본에는 100년 기업이 2만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독일(1만73개), 미국(1만2780개)보다도 역사가 오랜 기업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장수기업은 전통산업 부터 첨단산업까지 여러 분야에 골고루 포진해 있는데요.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대표 고무밴드 제조업체 교와(共和)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는 1923년에 회사가 설립됐지만 창업자가 고무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1917년부터라고 합니다.

이 회사는 각종 테이프와 의치용 재료 등도 만들고 있지만 주력 제품은 고무밴드 입니다. 백 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첨단산업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가격경쟁력이 중요한 고무밴드 분야에서 계속 살아남았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이 회사의 고무밴드 제품은 ‘오 밴드(オ?バンド)’라는 브랜드명으로 일본에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노란색과 갈색으로 디자인 된 상자를 보고 고무밴드를 곧바로 떠올리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일본 내에서만 하루 1억개의 고무밴드가 사용된다고 하니 말 그대로 생활밀착형 사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17년 창업자인 니시지마 히로소가 자전거 바퀴 튜브를 재료로 만든 것이 일본 고무 밴드의 원형이랍니다. 원래 고무줄·고무밴드는 19세기 영국에서 개발돼 일본에 수출됐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유럽 각국에서 수출할 여력이 사라지면서 일본 내에서 자체 생산에 나서게 됐다네요. 교와가 고무밴드를 생산하게 된 계기로는 당시 은행이 지폐를 묶는데 사용하기 위해 생산을 의뢰했다는 설도 있지만 진위여부는 분명치 않다고 합니다.

처음 제품을 생산할 때만해도 고무밴드·고무줄은 자전거 튜브로 만든 것이어서 색상도 검고, 잘 늘어나지도 않았지만 니시지마씨가 천연고무와 유황의 배합비율, 첨가제 등을 연구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잘 늘어나는 황갈색 고무제품이 탄생하게 됐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교와의 고무밴드를 구하려 오사카 회사 앞에 사흘을 기다려 제품을 받아갔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도 전해집니다.

현재의 ‘오 밴드’라는 브랜드명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부터 사용했다고 합니다. 박스 디자인은 의약품 맨소레담의 간호사 디자인을 했던 유명 디자이너 이마다케 시치로(今竹七?)가 담당했다네요. 1953년에 상표 등록한 뒤 사소한 변화는 있었지만 포장박스가 크게 바뀌지 않고 유지됐다고 합니다.


‘오 밴드’라는 브랜드명의 유래에 대해선 설이 분분합니다. 고무줄 모양이 O형이어서 라거나 “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고무밴드다”라는 등의 의견이 오가고 있다고 합니다.

포장 디자인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고무밴드 자체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2016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신형밴드에는 돌기가 있어 고정하기 쉽도록 했다고 합니다. 종이박스가 아니라 손바닥 크기의 귀여운 깡통에 빨간색, 하늘색 등 다양한 색상의 고무줄을 넣은 제품도 내놓았다고 하네요.

지난해 4월 구마모토 지진으로 공장이 붕괴되고 생산이 중단되는 위기도 겪었지만 적극적인 복구 작업으로 3개월 만에 생산 재개에 나설 수 있게 되는 등 오랜 연륜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합니다.

한편 교와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에는 한 분야에 오랫동안 매진한 장수 기업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이는 일본 기업 문화의 전반적인 특색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 대표기업들이 모여 있다는 주식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16년말 현재 도쿄증권거래소 1·2부에 상장된 3653개 상장사의 평균수명은 51.0년에 달했다고 합니다. 상장기업 대다수가 산전수전 다 겪은 ‘장년기’기업인 셈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49년 현재의 상장체제를 갖췄을 때 상장된 451개사 중 229개사가 여전히 상장기업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린홀딩스, 도레이,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제지, 미쓰비시전기, NEC, 시세이도, 후지쓰, IHI, 도요타자동차, 야마하, 도쿄가스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증시 ‘상장 멤버’입니다. 최근 경영난을 겪으며 상장 유지가 위협받고 있는 도시바도 1949년에 상장된 기업입니다.

현재 상장된 회사 중 창립 100주년이 넘은 ‘초장수 기업’은 112개사에 달했습니다. 전체 상장사의 3.07%가 100년 기업인 셈입니다. 100년 이상 된 회사 중에는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과 도쿄가스, 일본우편, 서일본철도 등 공적 성격을 겸한 회사가 많았습니다. 데이고쿠호텔, 모리나가제과, 가와사키중공업, 야마하, NEC, 도시바 등도 100년 넘게 일본 경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한국 기업들도 앞으로 오랫동안 건투를 이어가 일본의 장수기업들처럼 오랜 역사와 에피소드를 되돌아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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