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배려의 가치

입력 2017-10-26 18:20  

기찬수 < 병무청장 kchs5410@korea.kr >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밤에 물동이를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걸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요. 등불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잔잔한 울림을 주는 건 ‘배려’가 지닌 힘일 것이다. 짝 배(配)와 생각할 려(慮)를 써서 ‘짝처럼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의 배려라는 말을 필자는 좋아한다.

하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쉽지 않은 것이 배려다. 사회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타인에 대한 공감과 약자에 대한 배려,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지만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누가 누구를 배려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고군분투를 보며 안타까울 때가 많다. 누구에게나 추억 속 청춘은 푸릇푸릇하지만, 현실의 청춘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어른의 책임이 크다. 병역의무란 연결고리를 통해 그들의 고민과 애환을 가까이서 접하는 필자이기에 더욱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그렇지만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각자의 인연과 서로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젊은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돌이켜보면 필자의 인생도 그랬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시골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필자에게는 입대를 위해 병무청에 갔을 때 우연히 접한 사관학교 모집 포스터가 삶의 전환점이었다. 무심코 스쳐 갈 수 있었던 병무청과의 인연이 내게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됐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과 그들의 배려 속에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며,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피천득 님의 수필 한 구절이 새롭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젊은이들이여,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힘겨운 일상의 연속일지라도 크고 작은 인연들로 연결된 같은 시대, 젊은 날을 살아가는 동반자가 아니던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맺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안다면 서로에 대한 배려도 더 쉬워지지 않을까.

누구나 삶의 목표는 행복일 것이다. 서로의 생각과 차이를 인정하고 조금씩 양보하는 것,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면 행복의 진정한 조건 중의 하나로 ‘배려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기찬수 < 병무청장 kchs5410@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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