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정수기 렌털·건설사업으로 대기업 이뤄
외판 사원으로 출발해서 큰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가 있다. 윤석금 웅 진그룹 회장이다.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2012년 이후 사세가 많이 줄었지만 10년 전만 해도 30대 대기업 안에 들 었다. 1945년생인 윤석금은 26세 되던 1971년, 브리태니커라는 영국의 백과사전 판매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영어로 된 그 책을 팔아야 했다.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배고팠던 외판원 시절
첫 고객 앞에서는 말도 한마디 못 꺼내고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단단히 마음먹고 고객을 설득해 나갔다. ‘독해지기’ 위해서 식사비도 없이 출장길에 나섰을 정도다. 배가 고파서라도 게으름을 부릴 수 없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용기가 자라났고, 요령도 생겼다. 9년 후 전 세계 54개국 브리태니커 영업사원 중 최고 판매 실적을 기록할 정도가 됐다. 판매왕이 된 것이다.
승진도 했고 돈도 좀 벌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다. 남의 나라 책이 아니라 한국어로 된 어린이용 도서를 만들어서 팔고 싶었다. 출판사를 만들자면 누군가로부터 투자를 받아야 했다. 어떻게 할까? 누구도 해보지 않은 방식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외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무작정 일본 도쿄에 내렸다. 호텔을 잡은 후 전화번호부를 뒤져 출판사들로 전화를 돌렸다. 내가 대한민국의 판매왕 윤석금인데 출판업을 하려고 하니 투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모든 상대방들이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그 요청을 귀담아들은 출판사가 있었고 결국 투자를 받아냈다. 그렇게 해서 1983년 헤임인터내셔날이라는 출판사가 출범했다. 투자도 영업사원 방식으로 받아낸 셈이다.
사업이 보인다… 투자자를 잡아라
첫 상품은 헤임고교학습이 하는 강의 테이프였다. 신군부 정권의 과외 금지 조치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시간을 채워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헤임은 학생들이 학원 끝나고 나오는 밤 시간에 학원 앞에서 테이프를 팔았고 큰 성공을 거뒀다. 그것을 기반으로 한국 고유의 경치와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용 도서를 만들었다. 일본 것을 베낀 동화책에 식상해 있던 소비자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윤석금은 출판업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아 갔다. 회사 이름도 웅진씽크빅으로 바꿨다. 또 가정에만 머물러 있던 고학력 여성들을 뽑아서 판매사원으로 양성했다. 그들은 웅진출판사 책을 잘 팔아냈다.
윤석금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 사람이다. 책 판매를 위해 양성한 여성 판매사원들은 책 말고 다른 상품도 얼마든지 팔 능력이 있다. 웅진은 음료와 정수기 판매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했고 성공을 거뒀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와 맞닥뜨렸다. 정수기가 팔리지 않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사업을 다시 생각해 봤다. 불황기에 100만원이라는 목돈은 소비자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 대신 정수기를 빌려주고 매달 2만7000원씩 사용료를 받는 렌털 방식으로 전환해서 소비자의 목돈 부담을 줄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렌털 사업을 위해 정수기 관리를 담당하는 사원이 필요했는데 자기 차를 가진 주부들을 선발해서 원가를 낮췄다. 그 후로 다른 기업들도 렌털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는 미래 사업으로 진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웅진케미컬, 웅진에너지, 태양광 사업에 새로 진출했다. 2007년에는 9000억원을 투자해서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웅진그룹은 재계 30위에 들어갈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몰아닥쳤고 한국의 건설시장도 얼어붙었다.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2년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 상태로 넘어갔다.
시련의 계절… 법정관리 위기
그러나 윤석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도 착실히 사업을 지속해서 현금을 만들어냈다. 또 웅진케미컬 등의 지분을 매각한 대금으로 빚을 갚아 나갔다. 2014년 2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1년4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웅진그룹은 새 출발하게 됐다. 윤석금과 웅진그룹 앞날은 어떻게 될까. 무일푼에서 위대한 기업을 일으킨 윤석금. 그의 열정이 다시 살아나길 기대한다.
◆기억해 주세요
윤석금은 샐러리맨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윤석금은 무일푼 외판 사원으로 시작해 한때 30대 대기업에 속하는 웅진그룹을 키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출판업에서 사업 기회를 발견한 그는 투자자를 찾기 위해 일본에서 동분서주하는 무모함까지 발휘했고 마침내 투자를 받아냈다. 윤석금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었다고 할 만했다.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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