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화살머리 고지의 르우 병장

입력 2017-11-01 18:05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강원도 철원 백마 고지 옆에 있는 해발 281m의 화살머리 고지. 화살머리(화살촉)처럼 뾰족하게 생긴 이곳은 6·25전쟁 때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던 격전의 현장이다. 1952년 10월6~10일 프랑스 대대가 중공군 연대 병력을 막아냈고, 이듬해 6월29~30일과 7월6~11일에는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73사단을 격퇴했다.

첫 번째 전투는 10월6일 새벽에 벌어졌다. 중공군이 인근 역곡천 저수지의 수문을 열어 수공(水攻)을 펼치면서 포탄 1000여 발을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프랑스군 진지는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전사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밤 9시 무렵에는 방어선이 뚫렸다.

역곡천 남쪽으로 밀려난 프랑스군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격에 나섰다. 4개의 포병대가 8000여 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프랑스군은 긴급 투입된 국군과 미군의 지원 속에 5일간 격전을 거듭한 끝에 고지를 탈환했다. 이로써 인근 백마 고지를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47명이 전사하고 14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중공군은 전사 4838명, 부상 6691명 등 치명타를 입었다.

프랑스군은 전황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석 달 전 티본지구 전투에서 두 번이나 부상을 당하고도 혁혁한 공을 세운 병사도 있었다. 장 르우(Jean Le Houx) 병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19세 때인 1951년 12월 말부터 전장에 투입됐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지평리 전투와 피의 능선 등에서 용맹을 떨쳤다. 훗날 프랑스 정부의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도 받았다.

전역 후 고국으로 돌아간 그는 자동차 회사 시트로엥에서 오래 일했다. 2007년 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대한민국의 발전상에 깊은 감명을 받고 “내가 죽거든 전우와 피 흘리며 치열하게 싸웠던 화살머리 고지에 유해를 뿌려 달라”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84세로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 참전군인협회는 한국 정부에 고인의 뜻을 전했다.

보훈처는 국방부 등과 협의해 그의 유언을 실현하기로 했다. 어제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임시 안치됐다가 오늘 육군 5사단 DMZ 내 감시초소(GP) 근처 프랑스군 참전비 앞에 안장된다. 화살머리 고지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안장식에는 주한 프랑스대사와 동료 참전용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한 유엔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다. 프랑스의 레몽 베르나르를 비롯해 로버트 매카터(영국), 버나드 제임스 델라헌티(미국), 니콜라스 프란스 웨셀(네덜란드), 드레 벨라발(프랑스), 테오도르 알데베렐트(네덜란드) 등 6명이다. DMZ에 묻히는 참전용사는 르우가 처음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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