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 분야
현재를 '20년전 환란(換亂)으로 왜곡된 사회'로 규정
"불공정·특권 구조 바꾸는 것이 적폐청산
대기업사람중심으로 경제 패러다임 바꿀 것"
규제 완화·기업의 자유는 거론하지 않아
[ 조미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가주도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저성장과 실업이 고착화되는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처방으로 ‘사람 중심 경제’를 제시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국민은 희망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며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사람 중심 경제가 해답”
문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20년 전 외환위기의 후유증으로 진단했다.
문 대통령은 “외환위기가 바꿔 놓은 사회경제구조는 국민의 삶을 무너뜨렸다”며 “송두리째 흔들린 삶의 기반을 복구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책임에 맡겨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작은 정부가 선(善)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국민 개개인은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는 빠르게 우리를 빈곤으로부터 일으켜 세웠다”면서도 “정체된 성장과 고단한 국민의 삶이 증명하듯이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사람 중심 경제를 내세운 것은 이 같은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청와대 참모진은 입을 모았다.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같은 문제를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이라는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사람 중심 경제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다.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것”이라며 “지금이 바로 변화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규제 완화 언급 없어
문 대통령은 사람 중심 경제를 뒷받침하는 △일자리·소득 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세 개 축을 이루기 위해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복지 예산을 배정한 내년도 예산안(총 429조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 총지출은 (올해 대비) 7.1% 증가한 수준으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라며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하는 세법개정안의 국회 처리를 당부하면서 “서민 중산층 소상공인 지원을 보다 강화할 수 있다”며 “부자와 대기업이 세금을 좀 더 부담하고 그만큼 더 존경받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시장과 기업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혁신성장의 방법으로 중소기업, 창업기업 등에 재정 지원을 늘리는 방식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날 연설에서 ‘규제 완화’라는 단어는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일관된 정책을 펼쳐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해 나타난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이 국가 역할을 줄이면서 개혁에 나서는 이유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에 개헌 논의 요청
문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 개헌에 대한 의견을 재차 밝혔다. 문 대통령은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국회가 개헌 논의를 시작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주권을 보장하고 정치를 개혁하는 개헌이어야 한다”며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으로 새로운 국가의 틀이 완성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과 관련해서는 “법무부가 공수처 방안을 마련한 것은 국민들의 여망을 반영한 것”이라며 “법안이 통과된다면 저와 제 주변부터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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