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확인제도 개편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민간위원회를 구성해 혁신·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를 ‘민간주도’라고 표현하지만 진짜 민간주도로 가려면 정부가 벤처기업을 ‘확인’하겠다는 발상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실리콘밸리처럼 ‘민간 벤처캐피털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한 기업이 곧 벤처기업’이라는 인식을 왜 못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재정·정책금융을 마중물로 끌어들여 벤처자금을 늘리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재정·정책금융을 기반으로 한 펀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 민간 벤처캐피털 시장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재정·정책금융이 민간 벤처캐피털을 밀어내는 꼴이 되면 그건 ‘마중물’이 아니라 ‘독(毒)’이라고 해야 맞다.
정부가 벤처·창업을 주도하겠다는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코스닥 활성화, M&A 촉진 등을 위한 규제완화 또한 겉돌 수밖에 없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민간 벤처캐피털이 혁신생태계를 이끌도록 하겠다면 회수시장 역할을 하는 M&A와 상장 관련 규제를 더 파격적으로 혁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벤처정책으로 돌아가는 식이면 곤란하다. 1990년대 말 ‘묻지마 벤처붐’이 가져다 준 엄청난 후유증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민간 벤처캐피털이 주도하는 혁신생태계라야 비로소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