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짜깁기 대가 뒤마 "신도 자신의 모습 본떠 인간 빚었다"

입력 2017-11-02 19:35  

표절에 관하여

엘렌 모렐-앵다르 지음 / 이효숙 옮김 / 봄날의책 / 464쪽 / 2만3000원



[ 서화동 기자 ]
18세기 프랑스 비평가 장 프레롱은 당대 대가들을 공격하는 심판관으로 유명했다. 드니 디드로의 1757년 희곡 ‘사생아’도 그의 표적이었다. 프레롱은 이 작품의 요약문을 발표했는데 유명한 베네치아 극작가 골도니가 1750년 발표한 ‘진정한 친구’와 판박이였다. 지탄이 이어지자 디드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프랑스 국민의회는 지적소유권을 설정해야 했다.

디드로만이 아니었다. 스탕달의 ‘로마, 나폴리, 피렌체’는 타인의 여러 저서를 번역하거나 짜깁기한 것이었는데도 ‘에든버러 리뷰’의 찬사를 받았다. 스탕달이 이 잡지에서도 발췌문을 숱하게 훔쳐냈다는 걸 잡지 편집장이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삼총사’ 등 숱한 작품에서 복제와 짜깁기를 감행한 알렉상드르 뒤마는 비판자들에게 이렇게 응수했다. “신도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을 발명할 수 없었거나 감히 그러지 않았다. 신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어냈다.”

《표절에 관하여》는 프랑스 투르대의 엘렌 모렐-앵다르 교수가 창작자들의 뜨거운 관심사인 표절에 관해 폭넓게 들여다본 책이다. 표절과 상호텍스트성(텍스트 상호 간 유기적 관련성)의 전문가로 꼽히는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표절 역사와 시대적 변천, 출판 환경 변화에 따른 현대의 표절 행위와 이에 대한 법적 다툼,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규, 표절과 창작의 경계를 넘나드는 차용(借用)의 다양한 유형 등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유럽, 특히 프랑스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한 책이지만 창조적 모방과 뻔뻔한 베끼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표절에 깊고 넓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고대에도 표절은 작가들 간에 비난받는 행위였다. 라틴 문학은 그리스 대가들을 모방하기 일쑤였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대 작품에 대한 열광이 표절을 부추기기도 했다. 하지만 인쇄술과 종이의 보급으로 작품 유통이 활발해지자 표절에 대한 비난이 훨씬 잦고 거세졌다. 디드로, 볼테르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발자크 같은 대가들도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지적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므로 표절은 하나의 문학현상으로 간주돼 비난은 도덕적 차원에 국한됐다.

표절의 개념과 표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은 18세기 들어서였다. 프랑스어에서 표절이라는 명사가 등장한 것은 1697년 출간된 피에르 벨의 ‘역사적 비판적 사전’에서였고, ‘표절하다(plagier)’라는 동사는 1801년에야 나타났다. 이제 개인들은 자기 작품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법적 다툼으로 비화됐다. 특히 20세기 들어서는 콜라주, 유희적 글쓰기, 상호텍스트성 개념 등이 더해지면서 표절 문제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특히 상업적 성공에 연연하는 출판사들의 등장과 출판 환경 변화가 표절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교묘하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수익성 있는 책을 빨리 만들기 위해 출판사와 작가가 표절도 불사한다는 얘기다. 베끼기, 짜깁기, 대필, 저자의 명성을 이용한 마케팅 등의 부작용도 커졌다.

이 때문에 저작권 소송도 급증해왔다. 책에는 그런 사례들이 풍성하다. 1981년 출간된 레진 드포르주의 ‘파란자전거’는 마거릿 미첼의 베스트셀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표절했고, 프랑스의 석학으로 유명한 자크 아탈리가 1993년 출간한 ‘한마디 한마디’는 프랑수아 미테랑과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리에제르 비잘의 대담집에서 43군데나 발췌했다. 표절이 민감한 주제로 떠오르면서 유명한 작가나 노벨문학상 등 유명 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근거 없는 표절 시비도 잦아졌다.

이 때문에 저자는 지적소유권과 관련한 법적 개념과 규정, 텍스트 차용의 유형별 설명을 통해 이해를 도와준다. 직접 표절과 간접 표절, 전체 표절과 부분 표절, 인용의 세 가지 조건, 표절 개념과 혼동하기 쉬운 파스티슈(모작), 패러디, 위작, 후속작(속편)의 개념과 조건 등에 대한 설명도 유용하다. 죽은 저자를 인용하는 사후 인용, 한 문단에 여러 원전을 뒤섞은 혼합 인용, 작은 인용문이 큰 인용을 가리는 차폐 인용 등 표절 방식과 유형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어서다.

저자는 표절 논란이 갈수록 커지는 데 대해 “책이 비정한 생산 시스템에 의해 덫에 걸렸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지적한다. “책이 소비재로서 생산, 유통, 수익이라는 경제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표절은 일부 저자들이 보기에 하나의 경제적 솔루션이다. 베끼고, 금세 쓰고, 남에게 쓰게 하고 ….”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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