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이 날개처럼 펼쳐진 '신이 품은 땅'
다리로 이은 섬엔 거친 자연과 고성이 전설을 노래하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같은 장중한 대자연, 쇼팽의 녹턴처럼 서정적인 모습이 번갈아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름답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곳. 이런 풍경을 가진 곳은 세상에 또 없을 것만 같다. 스코틀랜드에 관한 얘기다. 여행하다 보면 예상을 뛰어넘는 만족감에 줄곧 행복해지는 여행지가 있다. 스코틀랜드가 그렇다. 여행지로는 낯선 까닭에 마치 깜짝 선물을 받은 듯하다. 시리도록 투명한 자연과 빛깔, 오랜 세월을 거친 도도한 문화와 전통. 영국 특유의 비구름도 이곳에서는 감미롭기까지 하다.
에든버러=글 사진 임성훈 여행작가 shlim1219@naver.com
스코틀랜드 여행의 핵심, 스카이섬
스코틀랜드의 북서쪽 열도인 이너헤브리디스(Hebrides) 제도에 있는 스카이섬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환상적인 여행지다. 제주도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거의 60분의 1 수준이라 여행 성수기에도 호젓하게 여행할 수 있다. 섬은 다리(skye bridge)로 이어져 있어 자동차로 쉽게 진입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하늘이 이곳에 허락한 자연은 독특하고 신비롭다. 날것 그대로의 풍경은 아이슬란드의 자연과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다. 현지인들은 이 섬이 ‘신화와 전설의 땅’이었다고 귀띔한다. 스코틀랜드 게일어(스코틀랜드에서 쓰이는 켈트계 언어)로 ‘날개 달린 섬’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섬의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빗댄 말이다. 그 덕분에 해안가 도로를 따라 움직이다 보면 놀랍도록 다양한 풍경이 펼쳐져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날씨 또한 변화무쌍하다. 몇 시간 사이로 구름, 바람, 해의 상태가 달라지곤 한다. 비가 잦고 보행로는 언제나 젖어 있기 일쑤지만 풍경은 극적이다.
바위산인 ‘올드 맨 오브 스토르(The Old man of Storr)’는 스카이섬에서 가장 멋진 절경 중 하나다. 이름처럼 멀리서 보면 노인의 옆얼굴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생김새를 가졌다. 약 2만 년 전 빙하기 시절에 깎이고 다듬어진 흔적이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해발 719m인 정상으로 향한다. 밑에서 보는 풍경도 훌륭하지만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산이 그리 높지 않아서 트레킹하기에도 부담 없다. 시간에 쫓긴다면 중간지점을 목표로 해도 좋다. 한 걸음씩 걸어서 올라가야 올드 맨 오브 스토르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
굴곡진 산, 넓은 초원, 거대한 호수가 모여 완성한 풍경을 보고 싶다면 스카이섬 동쪽에 있는 퀴랑(Quiraing)에 가 보는 것이 좋다. 시선이 내달리는 곳마다 고동치는 심장으로 흥분을 주체할 수 없다. 입구에서 몇 걸음 만에 큼지막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서 사람들을 맞는다. 감옥(The Prison)바위, 바늘(The needle)바위라는 이름만큼 저마다 생김새도 기이하다. 이 바위들 사이로 나 있는 트레킹 코스는 상당히 유명해서 많은 트레커가 찾는다. 그중에는 캠핑카나 텐트를 가져와 긴 거리를 걷고 돌아와 밤을 지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찾아 나서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잔디를 디디고 앉아 멍하게 시간을 보내도 퀴랑의 매력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환상적인 전망대 풍경과 밀트폭포
스카이섬의 환상적인 전망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보브타(Bobhta Uachdrach) 전망대로 올라가야 한다. 이 전망대는 게일어로 어퍼 토프트(Upper Toft), 즉 위편 언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에 서면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 육지가 시원스럽게 눈에 담긴다. 전망대 주변은 완만한 평야지형이라 높이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일단 절벽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보면 바닥까지 아득하다. 전망대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는 해안 절벽이다. 바다와 나란하게 끝없이 뻗어 있는 모습이 장관인데 유럽에서도 손꼽힐 만큼 대단한 규모다. 스카이섬에 뛰놀고 있는 양들도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진초록의 초원과 검붉은 절벽, 새파란 바다와 흰 구름 틈에서 연한 크림색을 발산하며 서 있는 양떼의 색감이 묘하게 대비된다.
보브타 전망대와 나란히 있는 해안에 숨은 또 하나의 보물이 밀트 폭포(Mealt Falls)다. 이 폭포는 스카이섬의 호수들과 연결된 릴트(Lealt)강이 바다를 향해 낙하하는 구간이다. 높이는 55m. 대단한 규모지만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기 전까지는 꼭꼭 숨겨져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만남이 더욱 반갑다. 폭포와 더불어 있는 주상절리 절벽인 킬트락(Kilt Rock)도 놓칠 수 없다. 까마득한 높이와 웅장한 크기는 밀트 폭포 못지않은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여행지와 시간대의 상관관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출과 일몰 때라면 더욱 그렇다. 스카이섬에서는 해가 질 무렵, 가장 서쪽 땅인 네스트 포인트(Neist Point) 등대로 향해야 한다. 망망대해로 길게 뻗어 나간 절벽, 그 위로 푸른 초원과 양떼, 하얀 등대가 어우러진 풍경은 황홀한 그림 같다. 태양의 붉은 빛이 거기에 더해지면 누구나 금세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야생의 자연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는 생각보다 넓다. 스코틀랜드 국토 자체를 아주 크게는 로우랜드와 하이랜드로만 나누니 나라의 절반 이상이 이 영역인 셈이다. 하이랜드의 백미는 역시 서쪽에 있는 글렌코(Glencoe)다. 어떻게 이 놀라운 자연을 표현할 수 있을까? 영화 ‘007 스카이폴’의 촬영지라거나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절경, ‘웨스트 하이랜드의 꽃’ 등 글렌코를 수식하는 표현은 많다. 하지만 그건 너무 애매하다. 초입부터 압도적이다. 신이 품고 있을 땅을 실수로 떨어뜨린 듯, 이질적인 환경과 광대함은 아무리 양보해도 인간의 시선에는 너무도 생소하다. 색 바랜 황무지와 깊은 협곡,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돌투성이 산의 모습은 또한 거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땅에 적응하기 전까지다. 산과 산, 협곡의 틈이 좁아지기 시작하면 세자매봉(The Three Sister) 주변이다. 여기서 전망하는 글렌코가 백미다. 거대한 세 개의 봉우리 사이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폭포 소리와 여러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산자락으로 뻗어 있는 산책 코스의 곡선은 바느질 길처럼 정겹다. 카메라의 한 앵글로는 담을 수 없는 풍경이기에 눈과 귀를 열어두도록 하자.
그 유명한 네스호수도 하이랜드 지역에 속한다. 호수 길이는 약 37㎞, 수심은 최대 230m에 달한다. 하이랜드의 주요 도시인 포트 윌리엄(Fort William)에서 인버네스(Inverness)를 거쳐 칼레도니안 운하에 닿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다. 수량도 방대해 잉글랜드와 웨일스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호수의 수량을 합친 것보다도 네스호 쪽이 더 많을 정도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크루즈를 타며 네스호의 괴물인 네시(Nessie)와 만나기를 바라거나, 유서 깊은 어쿼트 성(Urqhart Castle)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는 한다. 인파가 많은 호수 북쪽 대신 그 건너편의 자연을 향해 떠나보는 것도 괜찮다. 해수면보다 400m 정도 높은 이곳은 크고 작은 호수들이 불쑥 등장하고, 황무지, 협곡 등 다채로운 자연과 식생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트레킹 등 다양한 레저활동이 가능해 활동적인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다. 네스 호수와는 밀리터리 로드(Military Road)로 연결돼 있다. 만약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로드 트립을 완결하고 싶다면 이 길을 달려 볼 일이다. 이 도로에서 접하는 풍경만으로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분위기를 대략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일부 구간은 상하좌우로 구불구불해 꼭 롤러코스터를 타고 가는 기분이 든다. 하이랜드 지역 중심도시인 인버네스(Inverness)까지 이어져 편리하다.
스코틀랜드에서 꼭 가봐야 할 중세 성 4
스코틀랜드 여행 중 예기치 않은 즐거움이 있다면 고색창연하면서도 이야기가 가득 담긴 멋진 성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스코틀랜드는 3000개 이상의 성을 보유하고 있다. 16㎞마다 하나의 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스코틀랜드의 광활한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이니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성들은 모두 유명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여행 길에 발견한 보석 같은 4개의 성을 소개한다.
◆브레이브 하트의 배경 스털링 성
스털링성(Stirling Castle)은 일종의 요새다. 스코틀랜드 북부와 남부를 잇는 가장 중요한 길목에 서 있다. 이 때문에 과거부터 ‘스코틀랜드의 열쇠’로 불린다. 스털링성을 차지하는 자가 나라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배경이 된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에서 국민 영웅 윌리엄 월레스의 군대가 끝까지 항쟁한 곳이기도 하다. 명성만큼 규모도 크다. 내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이 훌쩍 흐른다. 먼발치에서 볼수록 더욱 빛이 난다. 성 아래 동네인 킹스 노트(King’s Knot)의 공원에서 올려다보면 바위 절벽 위에 올라선 성의 위용이 남다른 아우라를 발산한다. 15세기 이후에는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4세에 의해 궁전으로 탈바꿈되기도 했다. 1543년 메리 여왕의 대관식이 열린 곳도 성 안 성당이다.
◆007 영화 촬영지 에일린 도난성
에일린 도난성(Eilean donan Castle)의 역사는 1230년부터 시작한다. 스코틀랜드의 왕 알렉산더 2세가 두이치 호수와 알쉬 호수, 롱 호수가 만나는 교차로에 이 성을 건설했다. 목적은 데인족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함으로, 훗날 여러 전투를 거치다 함락된 성은 결국 버려졌다. 그렇게 약 200년간 방치돼온 성은 20세기 초반에 복원됐다. 이곳의 주인이었던 매켄지 가문을 섬긴 매크레이가의 손자에 의해서다. 호수로 둘러싸인 돌섬 위에 서 있는 입지, 그리고 주변 산세의 풍경이 더해져 하이랜드는 물론 스코틀랜드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007’ 시리즈는 물론 수많은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호그와트 마법학교 애니크성
해리포터 시리즈 초기에 등장한 호그와트 마법학교가 이곳이다. 먼발치까지 전해지는 우아한 품격과 바로니얼 양식의 만듦새를 보면 단숨에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해리포터를 논하기 이전에 애니크성(Alnwick Castle)은 숱한 이야기가 쌓인 역사의 장이다. 최초의 용도는 요새였다. 퍼시 가문에 의해 세워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보강을 거듭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애니크 성이 자리한 노섬벌랜드는 잉글랜드의 영토지만 스코틀랜드와 국경이 이어져 접근이 쉽다. 반나절 나들이를 위해, 혹은 성의 명성을 확인하기 위해 찾은 여행자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미드 왕좌의 게임 배경지 던성
당장이라도 갑옷으로 무장한 중세 기사들이 나타날 것만 같은 스코틀랜드의 성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그 시절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 배경지로 자주 선택받는다. 그 대표적인 곳이 던 성(Doune Castle)이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필두로 ‘아웃랜더’, 영화 ‘아이반호’ 등이 이곳을 배경으로 했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묘사된 이미지만 연상하고 방문한다면 예상외로 소박한 모습에 당황할 수 있다. 성이 세워진 던 마을이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실은 매우 작은 동네라는 사실을 알고 찾은 여행자에게는 예외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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