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vs 이란, 또 불거진 '앙숙 갈등'…기름값에 불붙이나

입력 2017-11-07 17:48  

힘 잃고 물러나는 '수니파 IS' 점거지역 쟁탈전
사우디 "이란, 예멘 반군에 미사일 공급은 전쟁 행위"
레바논 총리 사퇴·사우디 왕족 숙청과도 연관

중동 위기 심화땐 70달러 넘을 수도…미국 셰일오일 증산은 변수



[ 뉴욕=김현석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난 3~4일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사우디를 방문한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전격 사퇴를 선언하더니, 몇 시간 뒤 예멘 반군이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향해 쏜 미사일이 격추됐다. 또 사우디의 억만장자 알왈리드 빈탈랄 왕자를 포함한 왕자 11명과 전·현직 장관 등 수십 명이 부패 혐의로 전격 체포됐다.

이 세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 이란과 연관돼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국제 유가가 6일(현지시간) 급등했다. 중동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걸 투자자들이 알아채면서 매수세에 불을 댕겼다는 분석이 많다. 세계 경기 회복세에 따른 원유 수요 증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감산 연장 움직임 등에 힘입어 꾸준히 반등해온 유가가 새로운 변수를 만났다.

사우디-이란 갈등 격해지나

이슬람 수니파의 큰형격인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인 이란은 뿌리 깊은 앙숙이다. 영국 BBC방송은 레바논 총리 사퇴, 리야드까지 날아온 미사일, 그리고 사우디 왕족 숙청사태가 독립된 사건이 아니며, 이란이 원인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날 보도했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패퇴로 IS가 차지하던 지역을 선점하려는 사우디와 이란이 갈등을 빚어 나타난 사건으로 분석했다. IS는 지난 3일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최후 거점을 잃었다.

하리리 레바논 총리는 사임하면서 “이란이 내정에 개입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밝혔다. 레바논은 수니파, 시아파, 마론파 기독교계가 권력을 균점해온 나라다. 하리리 총리는 그동안 수니파의 지원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내각 구성을 위해 이란과 가까운 시아파 군사조직 헤즈볼라와 손잡은 미셸 아운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 최근엔 이란 고위 관계자를 만나기도 했다. 이런 행동에 사우디가 반발하면서 사임했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이날 격추한 예멘 반군 후티의 탄도미사일 파편을 조사해 보니 “이란이 공급한 탄도미사일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이를 부인했다. 예멘 내전은 사실상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이라는 관측이 많다.

같은 날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반대파로 분류되는 왕자들과 전·현직 장관 수십 명을 부패 척결을 이유로 체포했다. 한편 빈살만 왕세자는 다음날인 7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란의 후티에 대한 미사일 공급은 사우디에 대한 전쟁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BBC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란을 ‘외부의 적’으로 명확히 하는 한편 내부 반대세력을 제거해 입지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점에서 사우디와 이란 간 갈등이 격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앤디 리포 리포오일어소시에이트 사장은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 격화는 중동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며 “유가에 또 다른 불확실성이 더해졌다”고 말했다. 로베르토 프리들랜더 시포트글로벌증권 에너지본부장은 “현재 상황을 보면 사우디의 목표 유가는 50달러대라기보다는 70달러대로 보인다”고 밝혔다.

감산 연장에 부정적일 수도

이런 상황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산유국이 추진 중인 감산 연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산유국들은 작년 12월 원유 생산량을 하루 180만 배럴 줄이는 데 합의했으며, 지난 5월엔 내년 3월까지 감산을 연장하기로 했다. 사우디 등은 이를 내년 말까지 추가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오는 30일 열리는 오스트리아 OPEC 총회에서 관련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유가가 급반등하면서 감산 연장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높은 유가가 미국 내 셰일오일 증산을 부르고, 이는 유가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저유가로 셰일오일 생산이 주춤했지만 유가가 60달러대를 유지한다면 생산은 언제든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미국의 대형 셰일오일회사인 파이어니어내추럴리소스, 마라톤오일, 옥시덴털페트롤리엄 등은 유가가 반등한 지난 3분기에 2분기보다 1~11% 생산량을 늘렸다.

OPEC 회원국이 아닌 러시아 등 다른 산유국은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사우디를 비롯한 대다수 OPEC 국가와는 의견이 다르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석유장관은 2일 “감산 연장 여부를 결정할 시간이 5개월이나 남아있다”며 “감산 연장은 시장 여건과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클 코언 바클레이즈 에너지마켓리서치본부장은 “OPEC이 이달 총회에서 감산을 연장할 것이라는 관측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OPEC 내 대규모 산유국인 사우디와 이란 간 갈등 격화도 감산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양국 간 적대행위가 발생하면 원유 가격을 유지하고 세계 원유시장의 과잉 공급을 없애려는 OPEC의 노력이 좌절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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