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푸는 과정은 약간 복잡했다. 한·중 양국이 공동 발표문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 이른바 ‘3불(不) 원칙’을 밝혔다. 다음날 공동 발표문에는 정작 3불 원칙은 없었다. 대신 중국이 사드에 반대한다는 점을 재천명한 뒤 ‘중국 측은 한국 측이 밝힌 입장에 유의했으며 한국 측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했다’고 돼 있다.
석연찮은 韓·中 공동 발표문
그냥 “한국이 3불 원칙을 약속하고 이에 따라 중국이 사드 보복을 중단키로 했다”고 발표하면 간단한 것을 묘한 절차와 모호한 단어를 동원해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외교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당한 사드 보복을 한 중국은 어떤 사과도 없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사실상 다 관철시켰다. 일방적으로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한국 정부로서는 최소한의 체면 유지는 필요했을지 모른다. 3불 원칙, 그리고 ‘약속’이라는 표현이 공동 발표문에서 빠진 이유일 것이다.
이번 합의 과정을 놓고 보면 정부가 무언가를 숨기고 슬쩍 넘어가려 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만 해도 그렇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은 “공론화위원회가 탈(脫)원전 정책 전반이 아닌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만 결정한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하지만 정작 공론조사 결과가 ‘공사 재개’로 나오자 난데없이 원전 정책에 대한 공론조사 결과는 ‘원전 축소’가 과반이었다며 탈원전 정책에 대못을 박았다. “탈원전을 하더라도 향후 5년 내 전기료 인상은 없다”는 얘기도 비슷하다. 5년 뒤에는 전기료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얘기인가.
정부가 ‘꼼수’를 써가며 곤란한 순간만 어떻게든 넘기려 든다는 비난이 자꾸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가 이전 정부의 청와대 문건을 ‘필요할 때’마다 선택적으로 공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렇다. ‘적폐청산’을 제1호로 한 100대 국정 과제를 발표하면서 삼성 경영권 승계나 보수단체 지원 관련 문건을 공개하더니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연장을 앞두고는 세월호 보고 시점 조작 문건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하지만 믿는 이가 얼마나 될까.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집권당의 공영방송에 대한 영향력 축소를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다 여당이 되자 법 개정에 소극적이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 필요성을 역설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회 시정 연설에서 개헌을 언급하며 권력구조 개편 이야기는 쏙 뺀 것도 석연치 않다.
해명과 사과에 너무 인색
물론 집권당이 돼 정치를 하다 보면 후보나 야당 시절 약속을 100%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180도 입장을 바꿔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솔직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때로는 사과도 필요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부분에서 너무 인색하다. 지나치게 공약에 집착하는 듯하고 사과나 설명보다는 변명으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경우도 보인다. 인사 문제가 대표적이다.
높은 지지율을 믿는지 모르지만 지지율은 신기루와도 같다. “모든 국민을 잠시 속이거나 일부를 영원히 속일 수 있지만 모든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을 집권 6개월을 맞아 되새겨 보기 바란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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