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커지는 '노동 리스크' 뿌리기업 일자리 씨 말린다

입력 2017-11-07 18:24  

10개 이상 얽힌 노동이슈 해법은?

가중되는 인건비 부담, 자동화·무인화로 대응할 수밖에
정부 재정부담 불가피…사회보험료 등 기업·국민 부담도↑
노동계 요구만 무성해 대화 실종…경영계 목소리 들어야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jsc@hankyung.com



새 정부 출범 후 두드러진 이슈 중 하나가 노동분야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근로자의 연내 100% 정규직화를 시작으로 최저임금, 통상임금, 불법파견 등이 줄줄이 뒤를 잇고 있다. 산업계는 노동 이슈에서 불거진 불확실성 탓에 과도한 인건비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노동계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이 근로자 삶의 질 개선에는 여전히 모자란다며 더 많은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노동권 보장, 해고자 복직 등 5대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의 만찬 초청을 거부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원회)를 정상화하려는 새 정부의 노력은 공전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는 노동 리스크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종업원 수가 380여 명인 금속 제조업체 A사가 그렇다. △최저임금 1만원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3대 요소만 갖고 시뮬레이션했다. 최저임금 1만원이 현실화하면 현재 5100만원인 근로자 평균 연봉을 7200만원으로 41% 올려줘야 한다. 최저임금 계산에서 제외되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함께 인상돼서다. 근로시간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면 현재 270여 명인 생산직 근로자를 80명가량 더 뽑아야 한다. 새로 채용한 근로자가 충분히 생산성을 낼지 의문이지만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


회사 전체적으로 31%나 늘어나는 인건비도 부담스럽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제조현장 기피 현상이 심화하는 요즘 제때 채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주조, 금형, 열처리 등 뿌리산업은 훨씬 심각하다. 비정규직 이슈도 만만치 않다. 도급계약으로 제품 포장라인에서 근무 중인 외주업체 근로자를 모두 정규직화해야 한다. 외주 때와 비교하면 인건비 부담은 48%가량 치솟는다. 경기 북부지역 한 금형업체 사장은 “올라도 너무 오르니 설비자동화나 무인공정 개발 등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며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명확한 법률 기준이나 오락가락하는 법원 판결이 가져온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대법원은 2013년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판단 기준을 판시했지만 하급심은 계속 엇갈린 판결을 내놓아 산업현장의 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법원은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 최종 패소에 대비해 1조원 가까이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기아차는 10년 만에 적자를 냈다.

정부·법원이 오히려 리스크 키워

도급과 외주를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한 점도 문제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물류, 출고 등 간접공정에도 도급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물론 노동법학계도 비판을 제기했다. 제조업의 외주화를 사실상 전면 금지한 것이어서다. 최근 생산라인을 모두 외주화한 만도헬라는 근로자 전원을 원청에서 직접 고용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받았다. 파리바게뜨도 가맹점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소속 제빵기사 5378명을 한꺼번에 직접 고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정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상시·지속 업무는 원칙적으로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법률로 분명하게 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 원칙 제한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적용 △비교대상 근로자 범위 확대 등 비정규직 차별금지와 관련된 규제를 강화하는 대책도 내놓았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지난달 18일 제시한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의 핵심 내용 중 하나다.

사회보험 적용 확대와 그에 따른 재정 부담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내년부터 출퇴근 도중에 발생한 교통사고에도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출퇴근 재해에 산재보험을 적용할 것인지는 여러 해 동안 검토돼 왔다. 사업장 밖에서 일어난 사고의 책임을 사업주에게 물을 수 있느냐는 법적 논란이 있다. 일본은 산재보험법이 아니라 별도 법을 제정해 출퇴근 도중의 근로자 재해를 보호한다. 한국은 지난해 헌법재판소 결정을 계기로 산재보험법 개정이 급물살을 탔다. 통근버스로 출퇴근하다가 생긴 교통사고는 산재보험을 적용받지만 출퇴근 수단이 없는 영세기업 근로자는 보호받지 못해 형평이 맞지 않다는 것이 헌재 판단의 배경이었다. 근로자 보호라는 취지는 좋지만 문제는 재정이다. 정부는 당장 내년에만 6000억원가량의 산재보험 재정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내년도 예산을 짰다. 여기에 사고조사 담당 인력 590명을 근로복지공단에 새로 충원한다. 현재 직원 수가 6100여 명임을 감안하면 작지 않은 규모다. 결국 산재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사회보험 적용 확대 ‘발등의 불’

고용보험료 인상도 예고돼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실업급여 상한액도 월 150만원에서 내년에 180만원으로 20% 뛰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적용된 육아휴직급여 인상 이외에 앞으로 실업급여 수급기간 연장,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및 예술인 등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확대 등도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노·사·정 및 학계 전문가로 ‘고용보험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9월 말부터 논의 중이다. TF 목표대로 내년 상반기 고용보험법이 개정되면 고스란히 추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으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정부 방침도 주목 대상이다.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에 해직자가 포함돼 노조활동이 제한되는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 추진 배경이다. ILO 협약을 비준하려면 노동조합법 개정이 전제 요건이다. 이 경우 민간 기업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노동법학계는 “기업별 노조 중심으로 운영돼 온 한국 노사관계의 근본 틀을 바꿀 수 있어 충분한 사전 검토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다양한 노동 이슈를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노사 간 이해관계를 조율할 필요성도 큰 만큼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 출신인 문성현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2개월 동안 노·사·정 대화는 여전히 헛돌고 있다.

노사 관계나 노동 시장과 관련된 이슈들은 서로 맞물려 있기 마련이다. 최저임금 인상처럼 얼핏 노동계에 유리해 보이는 이슈도 저임금 영역에서의 고용에는 악영향을 준다. 사회보험 확대도 마찬가지다. 노사관계를 잘 조율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지만 현재 불거진 노동이슈를 경영계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다. 이런 까닭에 앞으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기울어진 운동장’은 여전할 것이라는 염려가 많다.

여전히 헛도는 노·사·정 대화

양대 노총은 노사 갈등이 오래된 장기투쟁 사업장에 대해 정부의 해결 의지를 보겠다며 노정 실무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고용노동부 차관, 민주노총 부위원장,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참여하고 있다. 실무협의에서는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부당노동행위를 벌인 사업주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 주로 논의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경영계 의견이나 입장을 전달하는 창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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