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 '비밀의 공간' 열다
주요 외빈 맞던 건복궁서 만찬 "오바마 때보다 몇배 수준 높아"
트럼프 도착 2시간 만에 항공 등 90억달러 투자 '선물'
G2, 9일 '강대강' 담판
북핵·무역 불균형 핵심 의제로
미국, 중국역할 등 압박수위 높일 듯
두 정상 '동상이몽'…성과 미지수
[ 강동균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후 처음으로 8일 중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최고 수준의 예우를 갖춰 환대했다. 자금성 내 ‘비밀 공간’인 건복궁(建福宮)에서 황제에 버금가는 연회를 베풀며 국빈 이상의 대우를 했다. ‘황제 코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 9일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비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트럼프 국빈 이상으로 환대
2박3일 방중 일정에 들어간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자금성 보온루(寶蘊樓)에서 시 주석 부부와 차(茶)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보온루는 신해혁명 후 모든 궁전 관리권을 장악한 군벌 중심의 북양(北洋)정부가 선양의 고궁과 허베이성 청더 피서산장에 있던 문물을 베이징으로 옮겨 소장하기 위해 1915년 지은 보물창고다. 자금성에 있는 유일한 서양식 건축물이다.
두 정상 부부는 차를 마신 뒤 창음각(暢音閣)으로 자리를 옮겨 중국의 전통 오페라로 불리는 경극을 관람했다. 창음각은 자금성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돼 있는 연극무대다. 청나라 말기 실권자였던 서태후가 경극을 보기 위해 자주 찾았던 곳이다.
이후 시 주석은 자금성 북서쪽에 있는 건복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안내해 만찬을 함께했다. 면적 4074㎡ 규모의 건복궁은 청나라 전성기였던 1740년 지어졌다. 건륭제는 가장 아끼는 유물을 이곳에 보관했고, 건복궁 정원을 자주 찾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1923년 전체가 불에 탄 뒤 2011년 복원됐다.
건복궁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자금성 내 ‘비밀의 공간’으로 불린다. 중요한 외교 행사가 있을 때만 공개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참관을 위해 방중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둥젠화 당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접대한 이후 미국 측 인사가 찾은 적이 없다.
홍콩 명보는 “건복궁은 2014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맞이한 중난하이(중국 최고지도부 거주지)의 여름 피서지 잉타이보다 몇 배 수준이 높은 곳”이라며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 ‘브로맨스(남자 간 우정)’를 부각시키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만찬 일정과 두 정상의 동선에 맞춰 사전 연습까지 했다. 자금성은 이날 하루 휴관했다. 당대회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대북 특사 파견을 보류하고 평양 여행도 금지했다.
베이징 시정부는 지난 4일부터 시내 건설공사를 중단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기간 공기질을 개선하려고 오염물질 배출 차량의 시내 진입을 막았고 바비큐 금지령까지 내렸다.
두 정상이 원하는 것 달라
트럼프 대통령은 방중 이틀째인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북핵 문제와 양국의 무역 불균형 해소가 회담의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군사작전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시 주석에게 대북 석유 수출 제한 등 독자적인 제재에 나서달라고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은 이에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철저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고수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회담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통상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일 전망이다. 미국 상품 수입을 늘리고 시장 개방을 확대할 것을 강하게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강제적인 기술이전 요구를 시정해달라고 주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양국은 생명공학, 항공, 스마트제도 등 분야에서 90억달러(약 10조원)에 달하는 19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정치국 상무위원인 왕양(汪洋) 부총리와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인민대회당에서 이 같은 내용의 계약 조인식을 했다. 왕 부총리는 “오늘 협약은 ‘몸풀기’에 불과하며 진짜 볼거리는 9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국제정치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얻으려는 결과가 서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은 무역 균형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노력 강화를, 시 주석은 △미·중 관계에 대한 미국의 분명한 입장 천명 △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합법적 권리 재인정 △윈-윈의 무역관계 확립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시 주석이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중국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서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정치 문제로 힘이 빠진 상태”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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