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농부는 여러 이유로 귀농?귀촌 지역을 떠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들의 실패 경험을 귀농?귀촌 단계별로 하나씩 들어본다. 네번째 이야기는 <실패에서 배운다(4)농촌은 다른 세상… 어르신 간섭, 토박이와의 갈등 비일비재>로 농촌 지역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의 경험을 소개한다.
도시의 생활습관을 농촌에서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귀농귀촌인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토박이 주민들이 많았다는 게 귀농귀촌한 전(前) 도시인들의 전언이다. 귀농귀촌인이 농촌에 적응하려 노력하다가도 토박이들이 쌓아놓은 높은 벽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가 부족해 갈등이 생겼을 경우 귀농귀촌인은 큰 상처를 안은 채 결국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이 같은 텃세나 갈등은 지역 분위기나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1. '귀농인 차별' 느낀 사람들
귀농 투자금 '덤터기' 쓴 김형식 씨
김형식 씨(52?가명)는 귀농할 때 하우스 4개동 및 농기계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1억원을 투자했다. 이중 하우스에만 4000만원을 들였다. 하지만 이후 시세를 알고보니 2500만원이면 충분했다. 기계와 차량도 지나치게 비싸게 샀다는 것을 알았다.
김 씨는 지역 시설업체가 시세를 잘 모르는 귀농인들에게 시가보다 더 비싸게 판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호소했다. 또 시설 설치자금의 50%를 정부가 지원할 경우 지역 내 업자가 가격을 일부러 높게 책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토박이였다면 이 같은 덤터기를 쓰지 않았겠지만, 단지 귀농인이라는 이유로 지역업체의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인부 구할 때마다 부녀회장에게 '사례'한 김천얼 씨
김천얼 씨(66?가명)는 귀농 후 감나무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철이면 인부를 구하기 위해 부녀회장 등 지역 내 명망있는 사람들을 찾아 부탁했다. 그럴 땐 항상 사례를 해야만 했다. 그냥 말로만 부탁한다고 인부를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례를 해서 보내오는 인부들도 다른 토박이 농가 일을 다 처리하고 나서 남는 시간에 조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김 씨는 지역 관공서에서도 토박이 주민에겐 쉽게 해주는 것을 귀농인들에겐 잘 안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토박이들은 '알음알음'으로 다 되는 일을 귀농인에게는 온갖 원리원칙을 다 적용시켜서 힘들게 만든다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2. 다른 농사법에 눈총받은 사람들
'친환경 재배' 혼자 해 외로웠던 안성주 씨
안성주 씨(35?가명)는 지역의 첫 블루베리 농가로 친환경재배 방식을 도입했다. 이 때문에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고 고립감도 많이 느꼈다. 특히 친환경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주민들의 간섭이 심했다. '한번 잘 되나 보자'는 말들에 안 씨는 더 오기가 생겨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작목에 대해 함께 논의할 사람이 없어서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결국 1차 귀농지역을 떠나 2차 귀농으로 지역을 옮겼다. 그 곳에선 농업기술센터 수업을 함꼐 수강한 젊은 농부와의 커뮤니티가 생겼고 이전보다 인맥이 많아졌다.
친환경 텃밭에 주민이 '제초제' 뿌려 난감했던 이영미 씨
이영미 씨(46?가명)는 사회사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귀촌했다. 남편과 함께 문화행사에 참여하면서 동네 토박이 주민과의 정을 쌓았다. 폐교 반대 운동 등을 통해 학교를 살리는 등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나서서 하자 토박이 주민들과도 나름대로 잘 어울려 지내게 됐다.
하지만 집을 비웠을 때나 자고있을 때 이 씨가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텃밭에 제초제를 뿌려주고 가는 토박이 주민들이 있었다. 친환경 농사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가 부족했던 탓이었다. 이 씨는 이 부분을 사생활 침해라고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호소할 데가 없었다.
3. 토박이와 어울려 지내는 데 지친 사람들
비위 맞추는 데 스트레스 받은 김후진 씨
김후진 씨(57?가명)는 귀농한 지역 노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토박이 노인들은 사생활에 참견이 많은 것은 물론 서운한 일이 생기면 시비를 걸고, 조금이라도 책이 잡힐 만한 게 있으면 흉보는 일이 허다했다. 김 씨도 힘들었지만, 아내가 좀 더 힘들어했다.
도시라면 상대하지 않으면 되지만 농촌마을에서는 신경을 안 쓰고 살 수가 없었다. 웬만하면 어울리려고 했지만 어울리면 어울리는 대로 힘들고 지루했다. 관심사도 달랐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았다. 결국 김 씨 부부는 이 지역을 떠났다.
지역 토박이 수발 들다 지친 이정선 씨
이정선 씨(60?가명)는 "귀농귀촌인은 지역에 무조건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배려 차원에서 지역 노인들에게 봉사했다. 노인들이 이동할 때 차로 태워 드리고, 농사를 지을 때도 힘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나서서 했다. 좋은 물건을 받게 되면 꼭 지역 주민들과 나눴다. 그러다보니 토박이 주민들은 이 씨의 도움을 권리로 생각하고 편하게 이 씨를 부리기 시작했다.
토박이들은 농사를 도와 달라며 꼭 비탈 경사지의 힘든 부분 농사만 부탁했다. 이 씨가 평소에 호박이나 옥수수를 나눠주다가 물량이 부족해 주지 못하면 "왜 안 갖다주냐"며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
<5편>
경험을 귀농?귀촌 단계별로 하나씩 들어본다.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는 <실패에서 배운다(5) 가족과의 불화,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외롭다">로 귀농?귀촌에 대한 가족 간의 인식이 달랐거나 기존 도시 커뮤니티에서 소외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의 경험을 소개한다.
돈벌이가 아닌 농촌생활 자체의 가치에 목적을 두고 귀농귀촌을 택했거나, 농촌으로 거주지를 옮기기 전 가족이 합의를 이뤄냈을 경우 가족내 갈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소득 창출을 주목적으로 귀농했거나 가족 중 한 명의 주도로 귀농한 경우 다툼이 잦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 생활에 대한 향수를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1. 가족을 설득하지 못한 사람들
'기러기 아빠' 하다가 가족과 멀어진 반석효 씨
반석효 씨(45?가명)는 아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도시에 두고 홀로 귀촌했다. 반 씨가 귀촌을 결심한 직접적인 이유는 사업 실패였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실패의 악몽이 자꾸 떠오르는 도시를 떠나는 게 더 급했다. 가족이야 주말에 자주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리가 멀고 서로 바쁘다 보니 막상 가족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반 씨는 자신이 '기러기 아빠'로 지낸 탓에 도시에 있는 가족과의 괴리가 커졌다고 생각한다. 반 씨가 농촌에서 일을 하는 동안 아내와 아들은 도시 생활에 더 익숙해져 갔다. 결국 반 씨는 가족이 있는 도시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예 귀촌 생각을 버리지는 못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아내와 아들은 귀촌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반 씨는 항상 가족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싫다는 아내와 귀농했다가 불화 겪은 김정규 씨
서울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던 김정규 씨(59?가명)는 시골에서 자연과 벗삼아 사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쉰이 되던 해 귀농을 결심했지만 아내와 딸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내는 시골로 내려가서도 잘 살 수 있다는 용기가 없었고, 딸 역시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난다는 일을 상상하기 힘들어했다.
그러다 딸이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김 씨와 아내는 둘이 땅을 사 농장을 꾸리고 귀농했다. 아내는 끝까지 탐탁치 않아 했지만 김 씨의 오랜 설득 끝에 함께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100% 동의를 얻지는 못한 탓에 귀농 후에도 부부싸움이 잦았다. 결국 아내는 홀로 서울로 돌아갔고, 귀농 과정에서 겪은 갈등 때문에 부부 사이는 소원해졌다.
2. 낯선 생활에 가족과 갈등 겪은 사람들
돈벌이 못해 부부 싸움 잦아진 박능하 씨
박능하 씨(56?가명)는 귀농을 실습해 본다는 생각으로 1년간 염소 사육(12마리)과 양계(관상닭 100여 마리)를 시도했다. 하지만 사육 규모가 작다보니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했다. 염소 사육이나 양계는 대규모로 하지 않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박 씨가 귀농 실습을 시도하는 1년여 간 돈벌이는 전적으로 아내가 했다. 아내는 귀농한 지역의 모텔에서 박 씨와 따로 숙식하며 청소일로 생계를 꾸렸다. 하지만 낯선 지역에서 부부가 떨어져 살다 보니 갈등도 생기고 싸움도 잦아졌다. 결국 부부는 귀농을 포기하고 도시로 복귀했다.
귀향했다가 아내와 사이만 안 좋아진 김정신 씨
김정신 씨(57?가명)는 고향에 있는 친구에게 싼 값에 과수원을 빌려 운영했다. 하지만 일이 서툴다 보니 부지런히 일해도 생활비 벌기가 힘들었다. 김 씨는 김 씨대로 농장에서 일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일용직을 구해 일했다. 고된 생활에 허덕이다 보니 부부 사이가 팍팍해졌다.
그래도 김 씨는 고향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토박이 주민과의 마찰이 있어도 함께 술을 마시며 풀었다. 하지만 타향 출신이었던 아내는 상황이 달랐다. 새로운 친구를 소개시켜 줘도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즐겁게 어울리지 못했다. 김 씨는 결국 농촌 생활을 포기하고 아내와 도시로 돌아왔다.
3. 도시 친구, 도시 생활에 향수 느낀 사람들
또래 친구 없어 외로웠던 최민석 씨
최민석 씨(40?가명)는 30대 중반에 이주했는데 귀농한 지역엔 또래 집단이 별로 없었다. 나이가 많은 지역 주민과는 세대 차이 때문에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문화적 고립감을 느꼈다. 대화를 할 사람이 없다 보니 벽을 보고 혼잣말을 하기 일쑤였다.
서울에 있을 때는 자연 속에 있고 싶었던 최 씨였지만 한 두 달 지나니 도시 생활에 대한 향수가 생겨났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경북 봉화에서 서울까지 올라가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자주 왔다갔다 하다 보니 차비가 크게 들었다. 최 씨는 경제적 부담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결국 이 지역을 떠났다.
서울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 느낀 권정식 씨
권정식 씨(46?가명)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서울에 있었다. 귀촌 초기엔 권 씨가 서울로 자주 가서 친구들을 만났다. 자주 만나도 거리는 무시하지 못했다. 지역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서울 친구들에게 불만이 생겼다.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들이 멀리 사는 사람의 편의를 잘 봐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만나려면 무조건 권 씨가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또 친구들은 지역에선 움직이기 힘든 평일 시간에 약속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평일에 갑자기 모이게 되면 권 씨는 모임에 참여하기 힘들었다. 권 씨는 친구들이 자신을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섭섭함과 소외감을 느꼈다.
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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