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족 숙청 뒤에 숨겨진 '개혁의 칼날'

입력 2017-11-09 17:06  

column of the week

왕자 11명·장관 등 반대파 구금
빈살만 왕세자에 권력 몰아줘
'젊은 개혁가'가 구태 청산할까

여성차별 등 '사회적 족쇄' 풀고
개인 자유 보장 '새 바람' 주도

석유만 기대다 성장 멈춘 경제
젊은층에 일할 의욕 불어넣어
사우디 '심장' 뛰게 할지 주목

캐런 엘리엇 < 하우스 전 월스트리트저널 발행인 >



[ 양준영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주말 동안 살만 빈압둘아지즈 국왕은 전임 국왕의 강력한 아들을 국가보위부 장관에서 끌어내렸다. 살만 국왕은 11명의 왕자와 전·현직 장관을 부패 혐의로 구금했다. 그 뒤에는 사우디의 젊은 개혁가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있다. 그는 이 같은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권위주의 통치자의 변덕이 아닌, 사우디의 구태를 씻어내는 것으로 보여지길 기대하고 있다.

이번 부패 수사는 왕족과 종교적 반대파뿐 아니라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을 겁주기 위한 것이다. 광범위한 불법 행위로 악명 높은 이 군주국에서 반부패 수사는 거의 모든 왕자와 전·현직 장관들이 표적이 되고, 구금되고, 여행이 금지되고, 재산을 몰수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좌관이나 동료들도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왕세자가 지난 1년간 치안과 국방을 장악한 만큼 반대 세력이 크게 성장할 것 같지는 않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개혁을 지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라.”

사우디 국민은 벌써 지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그러나 왕국이 필요로 하는 자본과 전문성을 갖춘 서구 투자자들은 이번 캠페인이 사우디 현대화의 증거인지, 평소와 같은 독재 정치의 하나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에서는 왕이 법을 지배한다. 왕이 살아있는 한 그는 전능하다. 하지만 죽으면 그의 유산과 프로젝트는 위험에 놓인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시스템이 너무 큰 위험을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우디인들에게 인기 있는 밀레니얼인 빈살만 왕세자는 이상적인 사회 개혁가라기보다는 실용주의자다. 그는 경제를 다변화하기를 절실히 원한다. 그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수십 년간 석유에 의존해온 경제와 교육과 일할 의지가 부족한 젊은이들이다. 여성 직원을 채용하고 체육관·영화관·나이트클럽과 같은 퇴근 후 활동이 가능한 현대적 근무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서방에서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빈살만 왕세자에게 국제적 지지는 자국민의 의견만큼이나 중요하다. 양쪽에 모두 호소하기 위해 그는 지난 18개월 동안 사우디 사회의 놀랄 만한 자유화를 주도했다. 이제 시민들은 여성들이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남성과 어울리는 것을 포함해 오랫동안 금지됐던 사회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

젊은 왕세자는 사회적 변화가 경제적 현대화의 필수 전제 조건이라고 분명히 믿고 있다. 그의 개혁의 일부는 극적이었지만 그 나라는 다각화한 탈(脫)석유 경제로 가기에는 아직도 멀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0%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큰돈을 투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석유는 여전히 사우디 재정 수입의 거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원유 감산은 높은 유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 변화가 경제적 목표를 이끌 것이라는 왕세자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진 사회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쇠락한 경제를 재편하는 것보다는 쉬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사우디는 수십 년 동안 세계적인 특이 국가였다. 사우디는 여성이 남성의 지배를 받도록 하고, 화장실 출입 방법과 생리하는 여성의 행동방식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삶을 세세한 점까지 관리하는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였다.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사회에서 전통적 가드레일을 신속하게 제거하고 있다. 성차별을 집행해온 종교경찰은 사라졌다. 여성들은 내년 6월부터 운전할 수 있다. 이미 남성 보호자 없이 레스토랑에서 모이는 여성들도 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조깅, 등산, 자전거 타기를 하는 것은 인기를 얻고 있다. 40년 동안 금지됐던 영화 관람도 연말까지 재개될 것이라고 왕세자는 말했다.

정부가 보조금을 줄이면서 리야드의 젊은 사우디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푸드트럭을 구입해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 남성은 허드렛일을 거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이들 젊은 사업가들은 햄버거, 닭날개, 타코, 파스타 등 음식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접한다. 한 젊은이는 지난주 대학 장학금을 받아 중국에서 사업을 배웠다고 필자에게 얘기했다. 그는 에어버스에서 하루 7시간 동안 일하고 밤늦게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판매한다.

40여 대의 푸드트럭이 리야드 북부의 공터에 모여 작은 야외 마을을 형성한다. 사우디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운영하는 푸드트럭에서는 남성 고객들에게 아라비아 커피를 판매한다. 여성들은 고객과 격의없이 이야기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남성과 대화했다면 이들은 감옥에 수감됐을 것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인들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게 되면 정부 지원금 의존도를 낮추고 스스로 생계에 책임을 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푸드트럭과 영화관이 현대적 경제를 만들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사회적 자유화에 대해 젊은 사우디인들은 광범위한 지지를 보냈고 침묵하는 다수는 이를 묵인했다. 일부 보수 비평가들은 선택적 체포로 침묵을 강요당해온 반면 사우디 종교단체는 대체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 제로에 머무른다면 빈살만 왕세자의 가장 큰 위협은 불만을 가진 왕족들이 아닐 수도 있다. 전통적인 억압에서 해방되고, 경제 전망에 실망한 사회는 통제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젊은 세대를 ‘양날의 검’으로 칭하며 이를 인정했다. 그는 “사우디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우디아라비아를 창조할 수 있다”며 “그러나 그들이 다른 방향으로 가면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원제=The Strategy Behind the Saudi Strife

정리=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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