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태평양 전략' 꺼낸 트럼프… 용과 코끼리 '힘의 균형' 이뤄낼까

입력 2017-11-10 18:46   수정 2017-12-18 14:53

허란 기자의 Global insight


[ 허란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야심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코너로 몰고 있다. 일대일로는 바다와 육지의 교통로를 만들어 중국에서 유럽까지 60여개국을 연결하는 신(新)실크로드 경제권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단순한 인프라 투자 정책이 아니다.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 앞서 당헌에 명문화한, 세계의 중심이 되려는 중국의 대외정책 구상이다.

인도 관점에서 일대일로는 인도를 지리적으로 고립시킨다. 지도를 보면 스리랑카, 미얀마, 파키스탄, 인도양을 거쳐 중국 해군기지가 있는 아프리카 지부티까지 이어지는 일대일로는 인도를 포위하고 있다. 인도와 유럽에 걸친 유럽어족 인구를 근간으로 한 인도와 세계 간 역사, 문화, 상업적 연결고리를 무시하는 처사로 읽힌다.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회담에 인도가 대표를 보내지 않은 이유다.

인도 현지 언론은 “(시진핑 주석의) ‘중국의 꿈(中國夢)’은 인도의 악몽”이라며 일대일로 정책에 극도의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은 국내에서 경제 개혁 반발에 직면한 모디 총리에게 중국 견제를 촉구하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는 역사적으로 중국과 힘의 균형을 이뤘다. 동아시아에 중국이 있었다면, 남아시아의 중심엔 인도가 있었다. 광대한 영토, 시장, 풍부한 물은 발전의 토대였다. 모디 총리는 그동안 중국을 도발하지 않는 정책을 써왔다. 하지만 변화 조짐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인도의 주권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중국-인도-부탄 3개국 국경지대인 둥랑(인도명 도카라·부탄명 도클람)에서 중국군이 도로 건설을 진행하자 인도가 즉각 500명의 군병력을 보내고 이후 1만여 명을 배치했다. 1962년 중·인도 전쟁으로 양국 간 국경이 정해지지 않은 분쟁지역이 말레이시아 넓이에 이른다. 이번처럼 인도가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은 10여 년 만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유권 분쟁 중인 카슈미르 지역이 일대일로에 포함된 것도 인도엔 민감한 문제다. 모디 정권은 미국과도 군사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도 내 중국 견제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경제 자신감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유엔에 따르면 인도는 2024년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이 된다. 인도는 세계 최대 디아스포라를 자랑한다. 해외 거주 인도인은 1560만 명, 중국인은 950만 명이다. 국내총생산(GDP)은 중국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성장률은 인도가 더 높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우자 인도 여론은 고무되고 있다. 이 전략은 인도를 통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맞아떨어졌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적극 옹호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역내 방위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하는 것도 인도에는 반가운 소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지난 6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전략을 언급했다. 10~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다시 한 번 인도-태평양 전략이 강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3일 필리핀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서밋에선 모디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협력 관련 양자회담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전략이 인도와 중국 간 힘의 균형을 잡아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로는 이 전략을 옹호하며 동맹국을 끌어안으려고 하지만, 정작 양자 무역거래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9일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2500억달러(약 280조원) 규모의 거래를 따내서인지 인도-태평양 전략을 논의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일본 내에서조차 일대일로가 절호의 투자 기회이기도 한 만큼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에 도발해선 안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대일로가 인도의 주권 자존심을 또다시 건드리면 제2의 둥랑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점잖은 코끼리(인도)가 용(중국)의 도발에 언제까지 인내할지 모른다. 말이 아니라 중국의 일대일로와 같은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필요하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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