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세 사우디 왕세자의 '야심'
'왕자의 난'으로 권력 쥔 빈살만
전방위 개혁 통해 왕정 강화 나서…이란 겨냥 '이스라엘과 연대설'도
제재 풀린 후 세력 불리는 이란
IS 격퇴한 시아파 민병대 후원…이라크·시리아 등서 세력 확대
헤즈볼라 영향력 커진 레바논서 사우디 연합과 대리전 가능성도
[ 허란 기자 ] 중동지역 평화는 어느 한 세력이 패권을 쥐려고 할 때 위협받아 왔다. 1970년대 시리아와 이라크의 패권 다툼, 1980년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이라크 전쟁 모두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나타난 충돌이었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을 잇는 친(親)이란 반(反)미국 성향의 이슬람 ‘시아파 벨트’가 힘을 받으면서 또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더군다나 상대는 이슬람 수니파의 맏형을 자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호전적인 젊은 왕세자다.
◆빈살만 왕세자의 꿈
32세 젊은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은 개혁가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왕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 하지만 왕위 형제계승 전통을 유지해온 사우디에선 꿈같은 얘기였다. 아라비아반도 20여 명 부족장의 딸과 혼약을 통해 1927년 사우디를 건국한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는 ‘왕자의 난’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형제계승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2015년 80세의 나이에 국왕에 오른 살만 빈압둘아지즈는 이 전통을 깨고, 큰 조카인 무함마드 빈나예프(58)를 제1 왕세자, 친아들인 빈살만을 제2 왕세자로 임명했다. 빈살만을 왕위에 올리기 위한 사전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빈살만의 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들어 탄력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덕분이다. 빈살만은 친위 부대를 동원해 지난 6월 사촌형 빈나예프를 가택 연금하고 제1 왕세자 자리를 빼앗았다. 이달 4일엔 정예군을 동원해 왕위 계승 경쟁자인 사촌형 왕자 11명과 측근 기업인들을 부패 혐의로 대거 체포했다.
빈살만의 숙청 작업은 그가 추진하는 개혁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빈살만은 저유가로 세계 1위 산유국인 사우디의 입김이 약해지자 ‘탈(脫)석유화’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5000억달러(약 564조원) 규모의 신도시 ‘네옴’ 건설 계획도 발표했다. 이슬람 성지인 메카가 있는 사우디가 그동안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통해 왕권의 안정성을 확보했다면 빈살만은 정반대 행보를 선택했다. 2011년 아랍의 봄에서 표출된 민주주의 바람을 목도한 이후 탈 이슬람 근본주의 개혁으로 변화를 열망하는 젊은 층의 지지를 끌어내기로 했다. 여성의 운전 허용이 그 시작이다.
여전히 중세적 왕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왕권 불안정이다.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둔 이란의 존재는 사우디 왕정엔 위협이다. 이란의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사우디 왕정엔 아킬레스건이며, 예멘 내전에선 이란이 지원하는 반군 후티가 사우디가 지원하는 정부군에 맞서고 있다.
◆반미 이란 vs 친미 사우디
북아프리카에서 중동 지역에 걸친 무슬림 지역인 아랍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오스만제국(현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1918년 오스만제국의 몰락으로 아랍 민족주의 국가의 탄생을 기대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이라크, 트란스요르단)과 프랑스(시리아, 레바논)의 식민 지배로 아랍 지역은 종교, 종족의 차이를 불문하고 일방적으로 재단됐다. 냉전시기엔 소련(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남예멘)과 미국(튀니지, 레바논, 모로코,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페르시아만 연안 군주국가)의 영향력 아래 머물면서 무기와 경제 원조를 얻어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함께 미국이라는 단극이 지배하는 새로운 규칙이 시작됐다.
이란은 중동 내 반미 세력의 중심에 있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1979년 시아파 종교지도자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혁명 이후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란의 신생정부는 팔레비 왕조를 지원했던 미국을 불신했다. 이듬해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이라크에 무기와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레바논의 시아파 공동체와 이라크·이스라엘·미국을 적대시한 시리아도 친이란 동맹에 가담했다.
사우디는 친미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사우디는 이라크가 국가 안정에 더 큰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사우디 국민들의 반대에도 미국의 보호를 선택했다. 2001년 9·11 테러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정당성을 만들어줬다. 이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적대시해온 시리아, 이란과도 대화를 시도했고 그 결과 이란의 경제제재를 풀어주는 핵협상이 타결됐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반이란 기조가 부상했다.
◆시아파 벨트 vs 사우디 신연합
핵협상 타결로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하며 반미 ‘시아파 벨트’의 복원을 노리고 있다. 시아파 벨트는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민병대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며 세력을 확대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 정치 영향력을 키우며 사우디 지원을 받고 있던 사드 알하리리 레바논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을 이끌었다.
이란의 득세가 불편한 것은 사우디만이 아니다. 반이란 기조의 미국, 레바논과 이웃한 이스라엘도 헤즈볼라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의 새 중동 전략의 중심국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부상한 배경이다. 쿠슈너는 지난 5, 8, 10월 사우디를 방문했으며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와도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레바논 내 헤즈볼라 영향력이 더욱 커지면 미국, 사우디, 이스라엘 신(新)연합이 이란과의 대리전을 치를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빈살만의 권력 장악 야욕, 이스라엘의 군사력, IS 격퇴를 위해 아랍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합쳐지면 원하지 않는 전쟁일지라도 못할 게 없다”고 보도했다.
사우디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악마의 거래’를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아랍권과 중동전쟁을 벌여온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이 지난 9일 언론 인터뷰에서 “그런 뜬소문(사우디-이스라엘 비밀연계설)에 답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은 배경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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