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에너지는 중국에 주도권 뺏겨
지멘스 가스터빈 3년간 수주 3곳
올 4분기 전력사업 영업익 40%↓
공장 11곳 문 닫고 인력 감축
GE도 3분기 영업익 51% 감소
배당금 줄여 구조조정 현금 마련
[ 오춘호 기자 ] 미국·독일의 대표 제조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과 지멘스가 주력인 발전설비사업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다. 글로벌 전력산업을 주도해 왔지만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 사용이 줄어들면서 핵심 발전기자재인 터빈사업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력이나 태양광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에선 신생 업체에 주도권을 내준 지 오래다. 전통적 경쟁자인 GE와 지멘스가 앞다퉈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신규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등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
◆신재생에너지 설비에서도 밀려
지멘스는 지난 분기 결산(7~9월·9월 결산) 결과 전력사업 매출이 36억유로(약 4조7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7% 줄어들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영업이익은 3억300만유로로 40% 급감했다. 주문량은 17% 감소했다. 세계적인 화력발전 급감이 원인이다. 2011년 화력발전소가 249개 건설됐을 당시 전문가들은 2017년 무렵엔 연간 300개 정도가 지어질 것으로 낙관했다.
예상과 달리 시장 여건이 확 달라졌다. 화력발전소는 갈수록 줄어들어 지난해 세계적으로 122개가 건설되는 데 그쳤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에 밀렸다. 독일에선 지난 3년 동안 3개만 발주돼 건설됐다. 가격도 크게 내렸다. 올해 터빈설비 대당 가격은 2014년보다 30% 떨어졌다.
사정은 GE가 더욱 심각하다. 지난달 20일 발표한 3분기 실적에서 전력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 영업이익은 51% 줄었다. 제프 본스타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시장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GE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한 대형 터빈은 2009년 134대에서 지난해 100대 남짓으로 감소했다.
GE와 지멘스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설비사업에 일찍 나섰지만 다른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진입 장벽이 낮아서다. 풍력 발전설비 분야에선 덴마크의 베스타스가 1위를 달리고 있다. 골드윈드, 에너콘 등 여러 기업이 GE, 지멘스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업체가 많다 보니 가격 경쟁이 뜨겁다. 지멘스의 풍력설비 분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7% 줄었다. 관련 인원 6000명을 구조조정했다. GE는 주문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6% 감소했다. 태양광 발전설비 분야는 중국 업체가 워낙 강세여서 GE와 지멘스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 속 누가 살아남을까
지멘스는 세계 23개 터빈제작 공장 중 11개를 폐쇄하거나 매각할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 독일 공장엔 비상이 걸렸다. 세계적으로 약 3만 명의 근로자가 이 부문에서 일하는데 이 중 1만2000여 명이 독일에서 근무한다. 이미 절반 이상의 인원 감축이 예정돼 있다.
지멘스 노조와 독일 정부는 인력 구조조정에 강력 반대하고 있다. 위르겐 커너 노조 대표는 “긴 싸움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브리지트 지프리스 독일 경제장관은 “지멘스의 조치가 치명적일 수 있다”며 경계했다.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노조원들의) 불만이 쌓이고 극우 선동주의를 키워 사회 불안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실적 부진에 GE는 최고경영자(CEO)를 경질했다. 존 플래너리 GE 신임 CEO는 13일 분기 배당금을 주당 24센트에서 절반(주당 12센트)으로 줄여 구조조정을 위한 현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력사업을 비롯해 항공·헬스케어 등 3개 사업에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나마 GE와 지멘스는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사업에 눈을 돌려 수익을 내고 있다. 디지털사업에서 시장은 지멘스를 더 좋게 평가하고 있다. GE 주가가 하락했지만 지멘스 주가는 상승했다는 점에서다. 지멘스는 내년 의료기기 부문을 따로 독립시켜 상장할 예정이다. GE도 의료와 항공 부문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
시장에서는 경쟁자인 두 기업 중 사업 재편을 서두르고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쪽이 결국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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