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골프 굴기는 시작됐다

입력 2017-11-14 10:09   수정 2017-11-14 10:16


샌디 라일(59)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스터스 챔피언이다.스물 아홉이던 1988년 그린 자켓을 손에 넣었고, 이보다 3년 전인 1985년엔 디오픈을 제패해 훈장까지 받은 영국의 골프영웅이다. 그는 2013년 ‘명인열전’ 마스터스에 출전해 이렇게 말했다. 만 15세였던 중국의 관톈랑과 마지막 4라운드를 돈 직후다. “깜짝 놀랐다. 관톈랑,너무 잘친다.”

‘골프영웅’의 극찬을 받았던 관톈랑은 초청선수로 출전한 마스터스에서 사상 최연소 커트 통과 기록을 썼다. 그것도 모자라 본선에서도 쟁쟁한 강호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느림보 플레이를 했다는 이유로 벌점을 받고도 58위를 했다. 베테랑 라일은 54위에 이름을 올렸다. 양용은,벤 크렌쇼,헌터 메이헌,그레이엄 맥도웰,루이 우스트히젠 등이 커트 탈락했던 바로 그 대회에서다. 천재 관톈랑 돌풍은 중국 골프에 대한 세계 골프계의 관심에 불을 댕겼다. 대륙의 골프열풍에도 도화선이 됐다.

그로부터 4년. 중국 골프가 다시 회오리를 일으킬 참이다. 펑산산이 지난 10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블루베이LPGA를 제패하면서 불꽃이 다시 튀고 있다. 중국인으로는 사상 최초 세계랭킹 1위 등극을 계기로 새삼 중국 골프의 힘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신지애,박인비,유소연에 이어 박성현까지 총 4명의 세계랭킹 1위를 배출한 한국의 독무대가 더이상은 아닐 수 있다는 경계심도 어느 때보다 강해지는 분위기다.

중국 여자골프의 약진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선수층이 눈에띄게 두터워지고 있다는 게 우선 그렇다.펑산산 혼자 고군분투하던 LPGA 투어에는 어느새 얀징, 펑시민, 린시위 등 신예들이 잇달아 진출해 왕성한 투어 활동을 하고 있다. 미녀골퍼 시유팅에는 한국의 기업이 후원까지 하고 있다. 아직까지 중국의 승수는 펑산산의 9승이 전부다. 기술적 수준도 한국에는 못미치는 선수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많은 유망주들이 2부 투어를 통해 꾸준히 정규 투어 입성을 노리고 있고,중국 정부가 아마추어와 프로 대표팀까지 정부 돈으로 육성하고 나서는 최근의 추세를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2의 펑산산’ 출현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중국은 이미 한국 코치진까지 영입해 지난해부터 골프 강국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여자골프뿐만이 아니다. 비교적 변화가 느린 남자골프에서도 중국세는 ‘미풍’ 수준을 넘어섰다. 관톈랑이 아마추어 중국 골프의 에이스라면,리하오퉁(22)은 중국 남자 프로골프의 대표주자다. 리하오통의 움직임부터 범상치 않다. 이미 유럽프로골프(EPGA) 투어의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선두 경쟁을 하는 빈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EPGA 볼보차이나오픈을 제패하며 가능성을 보여준 그는 지난 12일 끝난 EPGA 투어 네드뱅크 골프챌린지 대회에서도 리 웨스트우드(영국), 마틴 카이머(독일) 등 쟁쟁한 베테랑을 제치고 4위에 올라 상승무드에 진입했음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사실 리하오통의 잠재성은 초청 선수로 출전한 미국남자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대회 ‘디오픈’에서 진작에 드러났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당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를 제치고 단독 3위를 차지했다.중국 선수가 손에 쥔 PGA 투어 역대 최고성적이었다.

리하오통뿐만이 아니다. PGA 투어에도 2017~2018시즌에 처음으로 중국 국적 프로 2명이 시드를 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 스무 살인 더우쩌청과 서른 살인 장신쥔이다. 이 가운데 장신쥔은 지난 13일 멕시코에서 끝난 PGA 투어 OHL클래식 대회에서 공동 20위에 올랐다.

아마추어 골프계에선 중국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른 지 오래다. 린위신(17)이 지난달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제패한 게 대표적이다. 그는 이 대회 챔피언에 오르면서 2018년 마스터스 토너먼트와 디오픈 챔피언십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2009년 한국 선수가 1~3위를 휩쓰는 등 텃밭처럼 여긴 대회였다.

언제부턴가 중국은 세계 각국 주요 투어의 큰손(후원사)으로,국제대회를 쥐락펴락하는 강자로 글로벌 골프계의 중심에 들어와 있다. 자국내 ‘호화 사치 불법’ 골프산업은 ‘녹색아편’이라 부르며 통제하면서도 학생들의 골프 유학과 프로의 해외 투어 진출은 장려하고 기업들의 골프마케팅은 지원해주는 ‘이중 정책’의 결과물들이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부호들이 늘어나면서 부자 부모님 밑에서 불편없이 골프를 배우는 주니어 골퍼가 중국 내에만 1만명이다. 수천 명의 중국 ‘골프 노마드’들이 미국,뉴질랜드,호주 등지에서 선진 골프를 익히고 있다.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 한국 주니어 골퍼 숫자와는 대조적인 현실이다. 미국에서 유소년 골프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 한 프로 골퍼의 말이다.

“미국의 주니어 골프 아카데미의 80%가 중국학생이예요. 한국 선수는 고작 1~2명 정도고요. 3~5년 후에는 차이나 파워는 현실화될 겁니다. 중국의 골프 굴기,진작부터 시작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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