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부터 마두로까지 퍼주기식 복지로 '경제파탄'
성장 주역 될 중산층 자녀들 상당수 미국·유럽으로 떠나
작년 8월부터 1년간 미국 망명 신청자도 2만7000여명
[ 추가영 기자 ]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인 베네수엘라의 또 다른 그늘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실정에 엘리트들이 대거 나라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집권한 1999년 이후 베네수엘라를 떠난 국민은 200만 명에 달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심각한 인재 유출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2013년 차베스로부터 정권을 이어받았지만 베네수엘라 경제는 파탄 지경이다. 풍부한 석유자원만 믿고 무상교육·의료 등 ‘퍼주기식’ 복지정책을 시행한 결과다.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경제난이 깊어졌고, 이에 따른 반(反)정부 시위가 들끓고 있다. 국가 부채는 1500억달러로 불어났지만 외환보유액이 100억달러(약 11조원) 아래로 줄어들었다.
급기야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는 이날 각각 베네수엘라 국가신용등급을 ‘CC’에서 디폴트(채무 불이행) 직전의 ‘제한적 디폴트(SD)’로 두 단계 떨어뜨렸다. SD는 일부 채권에서 부도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차베스 혁명’ 피해 망명 시작
토마스 파에스 베네수엘라 이민전문가에 따르면 차베스 대통령 집권 이후 200만 명 이상이 나라를 떠났다. 이는 1959년 ‘카스트로 혁명’이 일어난 이후 20년간 쿠바를 떠난 국민 수의 두 배에 달한다. 해외 언론은 좌파 지도자의 ‘독재’가 초래한 현상으로 분석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통제하는 베네수엘라 제헌의회가 야권 지도자들을 반역혐의로 재판에 회부하는 등 반정부 인사를 탄압하자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은 좌파정부의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이 독재로 변질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지난 4월부터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면서 집압 과정에서 최소 120명이 숨졌다. 극심한 식량난 탓에 미국 등 주변국에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올 들어 8월까지 지난 1년간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베네수엘라 국민은 2만7601명에 달했다.
◆인재 유출이 성장에 악영향
WSJ는 20년간 베네수엘라를 떠난 해외 망명자 가운데 상당수가 ‘골든 제너레이션(황금 세대)’에 속해 있다고 전했다. 황금 세대는 일반적으로 특정 분야에서 특정 연령층에 집중된 인재들을 말한다.
베네수엘라의 황금 세대는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1983년 석유 공급 과잉으로 베네수엘라 통화 가치가 급락하기 전에 태어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 재임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다.
WSJ는 베네수엘라 중앙대 교원의 자녀들을 대표적인 황금 세대로 꼽았다. 이들이 수학한 학교(CEAPUCV)의 1994년 졸업반 학생 3분의 2가 미국 텍사스주, 스페인 마드리드, 호주 시드니 등 세계 각지로 떠났다는 것이다. “미래의 은행가, 변호사, 경제학자를 꿈꾸던 1994년 졸업반 학생들이 베네수엘라를 이탈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WSJ는 평가했다.
◆‘포퓰리즘 독재’가 부른 현상
차베스 전 대통령은 정권 출범 당시 빈부격차와 빈곤층 증가를 해결하겠다고 자신했다. 새 헌법에 근거해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소수 자본가에게 부가 집중됐다며 재분배를 추진했다. 이 같은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인재 유출이 국가부도를 가져온 요인 중 하나라는 게 WSJ의 분석이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13일 2019년과 2024년 만기가 되는 외화표시 국채 이자 2억달러를 상환하지 못했다. S&P와 피치가 신용등급을 강등한 여파로 2019년 만기 국채 가격은 액면가 1달러당 25.7센트로 급락했다. 25억달러에 달하던 국채 가치가 약 20% 떨어졌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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