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긴박했던 '수능 연기' 막전막후…"패러다임 전환" 평가도

입력 2017-11-16 13:16   수정 2017-11-16 23:08

지난 15일 오후 2시29분경 규모 5.4의 강진이 경북 포항을 강타했다. 현장 피해가 상당하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중앙’의 체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내일(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일) 지진 났으면 아수라장 됐겠네….” 대부분 교육부 출입기자들의 속내였을 터이다.

기사를 쓰기 시작했지만 어디까지나 ‘가정법’이었다. 포항 인근의 여진(餘震)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능 당일 지진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시·도교육청의 ‘재난 대처 시나리오’를 뒤적이던 차에 “수능은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교육 당국 방침이 전해졌다.

수능 및 학교안전 관련 담당자들이 기자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설명한 지 두 시간 가량 지난 오후 6시15분께,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사진)의 ‘포항 지진 관련 수능 긴급 브리핑’을 안내하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브리핑 시각은 미정. 이때까지만 해도 책임자의 안전대책 당부 수준으로 예상했다.

한데 시간이 자꾸만 흘러갔다. ‘뭔가 있구나’. 느낌이 왔다. ‘혹시 수능을 연기하는 걸까’와 ‘설마 연기까지야 할까’라는 생각이 뒤섞였다. 바로 그때 문재인 대통령은 현장을 찾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서 “수능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보고를 받고 결정을 내리던 참이었다.

오후 8시가 가까워지면서 행안부와 교육부 쪽에서 수능 연기를 검토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8시를 갓 넘겨 다시 한 번 휴대폰이 울렸다. 김 부총리의 브리핑 시각을 확정했다는 문자였다. 그리고 8시20분, 마이크를 잡은 김 부총리가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 결정을 전격 발표했다.

1994학년도 수능 도입 이래 최초인 만큼 파장은 컸다. 수도권 한 고교 3학년부장은 “‘수능 연기’라는 뉴스 자막이 떴을 때 오보인 줄 알았다”고 했다. 또 다른 고교의 진학부장도 “학생들이 말 그대로 멘붕(멘탈붕괴)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울거나 소리 지르는 학생도 있었다”고 전했다. 고교와 대학뿐 아니라 수험생, 학부모, 학원들까지 모든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 했다.

각자 입장에 따라 의견은 갈렸으나 △정부가 현장을 찾아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린 점 △그 과정에서 혼란 최소화를 위해 교육부 장관 공식 발표 때까지 일체 함구한 점 △수험생 안전과 피해 지역 수험생과의 형평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세월호 참사의 학습효과인 셈이다.

실제로 당초 일정대로라면 수능이 치러질 시각인 16일 오전에도 포항 지역엔 규모 3.6의 지진이 발생하는 등 본진(本震) 후 40차례 이상 여진이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수능 연기로 혼선이 불가피했지만 예정대로 수능을 강행했다면 더 큰 혼란이 일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수능 연기 결정은 지진 추가발생 가능성 등 안전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매우 적절한 조치”라며 반겼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정부는 수험생들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국민도 힘과 지혜를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자신을 고교 교사라고 소개한 누리꾼은 “설마 내일이 수능인데 연기까지야 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책임자인 교육부·행안부 장관이 직접 뛰어다니면서 결정하고 발표했다”며 “이번 수능 연기는 ‘안전이 효율보다 중요하고, 소수의 피해를 덜기 위해 다수의 불편은 양보하자’는 방향으로 우리나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해 호응을 얻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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