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3인 인터뷰
[ 노경목 기자 ] 삼성전자가 올해 내놓은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TV의 가장 큰 특징은 케이블이다. 뒷면에 검은색 케이블이 얽혀 있는 다른 TV들과 달리 QLED TV의 투명 광케이블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게임기 등 잡다한 주변 기기가 연결되는 셋톱박스와 TV를 잇는 지름 1.8㎜의 광케이블은 주의 깊게 살펴봐야 겨우 보이는 정도다.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에서 투명 광케이블을 개발한 구승완 상품기획 담당과 배창훈 연구원, 윤상운 상품기획 담당 등을 만나 개발 과정을 들어봤다.
▶투명케이블을 TV에 적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구승완 담당=집에서 TV를 사용하면서 항상 들었던 생각에서 출발했다. TV는 식구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설치돼 있다. TV를 중심으로 케이블 셋톱박스와 게임기, 블루레이 플레이어 등 온갖 기기가 놓여 있고 케이블도 지저분하게 연결돼 있다. 사용해야 하는 기기가 많다 보니 여러 개의 리모컨이 거실에 굴러다닌다. 이런 환경을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정돈할 수 있을까, TV 위치를 바꾸더라도 지저분한 케이블을 처리할 수는 없을까 등을 고민한 결과가 투명 케이블이다.
△윤상운 담당=고객들을 면밀히 조사했더니 비슷한 문제의식이 발견됐다. TV 사용자의 80%는 공간 활용도 등에서 장점이 있는 벽걸이 TV를 선호했지만 실제로 TV를 벽에 걸어놓는 경우는 20% 이하로 조사됐다. 벽걸이 TV를 설치하기 불편할 뿐 아니라 TV 아래 주렁주렁 매달리는 케이블이 보기 싫다는 점이 이유였다. 투명 케이블을 이용하면 벽걸이 TV 주변의 선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이 같은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투명케이블은 어떻게 구현했나.
△배창훈 연구원=기존 케이블의 구리선 대신 빛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광케이블을 사용했다. 구리 케이블 여러 개를 사용해 전달하는 정보를 케이블 하나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케이블은 안정적이기도 해 국가 기간 통신망이나 해저 통신망 등에도 이용된다. QLED TV의 광케이블은 두께가 기존 케이블의 4분의 1인 1.8㎜에 불과하지만 데이터 전송속도는 75기가bps로 더 빠르다.
다양한 기기에서 TV로 가는 정보는 ‘원커넥트 박스’를 거쳐가도록 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원커넥트 박스와 각종 기기를 연결해 놓았다. 박스에서 TV까지는 최대 15m 길이의 투명 광케이블이 이어줘 TV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광케이블과 원커넥트 박스 등을 만드는 데 50여 가지 특허 기술이 개발됐는데 이 같은 기술을 모두 개발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배창훈 연구원=광케이블을 투명하게 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기존 광케이블은 방탄복에 들어가는 특수 소재인 케블라가 광섬유를 감싸고 있다. 노란색이나 검은색 등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기존 광케이블만큼 튼튼하면서도 투명한 피복 재료를 찾기 위해 수백 개의 샘플을 만드는 등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적합한 투명도를 찾는 것도 관건이었다. 실제 거실 벽면에 놓으면 어떻게 보이는지 가정집을 직접 방문해 벽지 색깔과 재질 등 TV 주변 상황을 조사했다. 나라마다 벽지도 다른 만큼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현지 가정집도 찾아갔다. 건축 및 인테리어 전문가들과 TV를 설치하며 소재와 색상, 투명도 등에서 최적의 소재를 찾았다.
투명한 케이블을 만든 뒤에도 문제는 있었다. 자외선이나 햇빛 등 외부 빛이 광섬유에 비치면 통신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외부의 빛과 광섬유를 통과하는 빛의 굴절률을 다르게 조정했다. 개발하는 과정에서 케이블 자체를 없애고 무선으로 원커넥트 박스와 통신하게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TV 화질이 높아지면서 데이터 양도 많아져 자칫 화면이 끊길 수 있다는 문제가 지적돼 투명케이블을 개발하게 됐다.
▶TV를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시청하기도 좋아졌다.
△윤상운 담당=사실 TV를 벽쪽에 붙여 설치하는 이유는 TV 뒷면이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투명 케이블을 적용하면서 소비자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실내 어디든 TV를 놓고 쓸 수 있게 됐다. 어느 방향에서 TV를 바라봐도 깔끔한 모습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투명 케이블을 적용하면서 여기저기 움직이기 쉬운 이젤 형태의 스탠드를 함께 출시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투명 케이블이 있었기에 ‘스크린 에브리웨어(screen where)’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TV에 여러 요소가 있을 텐데 케이블 하나에 많은 연구 인력이 매달렸다는 것이 흥미롭다.
△배창훈 연구원=TV 주변의 선을 보이지 않도록 하고, TV를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보도록 한다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시도였다. 상품기획부터 개발, 품질, 제조 등 다양한 부서가 협업한 이유다. 상품기획부서와 개발부서가 긴밀하게 소통하며 소비자의 필요를 분석하고, 구체적으로 TV에 어떻게 적용할지 논의했다. 어느 쪽에서 바라봐도 아름다워야 하는 만큼 디자인 부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품질 부서는 새로운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신규 테스트 방법을 만들었다.
▶고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구승완 담당=가장 눈에 띄는 반응은 TV를 벽에 설치하는 가구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장식장 위에 TV를 올려놓던 고객들이 TV를 벽에 걸면서 인테리어 등도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QLED TV의 투명 케이블 덕분에 거실이 넓어졌다는 반응도 있다. TV 장식장이 차지하는 면적이 6.6㎡ 정도니 그만큼 체감 공간이 늘어난 것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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