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명 음악가나 오케스트라가 한국 무대에 설 때 우리는 큰 감동을 받고 가슴도 데워진다. 그 음악가를 향한 애정과 기대는 물론 신비감마저 깔려 있어서다. 설령 그날의 연주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조금 지나 생각해보면 좋았던 감정이 이런 느낌들을 에워싼다. 지난 1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다니엘레 가티가 지휘한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사진)의 내한 공연을 보며 든 생각이다.
서곡 없이 시작된 연주회의 첫 문을 연 것은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1번이었다. 협연자는 이 악단의 수석첼리스트 타티아나 바실리바.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지휘한 가티는 그들이 음악적으로 지키기로 한 약속 지점만 간략하게 짚어줬다. 허공의 나비 한 마리를 잡는 듯한 가벼운 손놀림이었다.
1악장은 하이든 특유의 경쾌함과 함께 흘러갔고 느린 2악장의 아다지오는 공기처럼 편안히 다가왔다. 3악장에서 협연자의 비르투오소(대가, 거장)적인 면모를 기대했지만 바실리바는 개성 강한 독주자보다는 앙상블을 우선시하는 수석주자처럼 연주했다.
말러 4번 교향곡에서 가티는 지휘봉을 들었고 모션도 커졌다. 하지만 하이든 협주곡 연주 때와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말러 특유의 자극적인 소리와 첨예한 음의 대립을 찾아볼 수 없었다. 느린 3악장의 말미에 음악이 크게 부풀어오르는 대목에서 4악장 협연을 위해 소프라노 서예리가 등장했다. 가티와 거의 마주한 듯한 서예리도 독창자보다는 오케스트라의 일원처럼 악단이 이끌어온 차분한 흐름에 목소리를 맡겼다.
이 정도면 이번 연주는 ‘영 그랬다’로 귀결될 수 있다. 우리의 귀는 2010~2011년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연주 시리즈 때문에 기대치가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해외처럼 여러 해석을 만날 수 없는 우리에게 그것은 이미 기준이 됐다. 가끔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새롭고 자극적인 지휘로 그 기분을 전환해주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가티와 같은 무위(無爲)의 해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막이 내린 뒤 이번 공연의 잔상과 여운을 가슴에 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의 귀가 일방적인 자극에 길들여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달한 시럽과 휘핑크림이 없는 커피는 왜 먹는지 모르던 필자가 순수 아메리카노를 처음 맛보고 ‘이거 괜찮네’라고 생각한 날이 떠올랐다.
송현민 음악칼럼니스트 bst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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