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인생 플랜'… 곳곳서 "나 어떡해"

입력 2017-11-16 17:35  

포항 강진… 수능 연기 후속대책

회사에 휴가 또 못 내는데…수술·가족여행 '물거품'

수능 연기 '후폭풍'

국방부 "수능 볼 수 있게 조치"
군인 수험생들은 '안도의 한숨'



[ 성수영/구은서 기자 ]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로 인해 당초 설계한 ‘인생 플랜’이 꼬이게 됐다는 수험생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넘쳐나고 있다.

직장을 다니며 몰래 수능을 준비해온 ‘늦깎이 수험생’들의 좌절감이 특히 크다. 국내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씨(27)는 “그동안 교대를 가려고 직장을 다니면서 수능을 준비했는데 이제 다 틀렸다”며 “상사가 연차 사용을 허락하면서 ‘수능 치는 거 아니냐’며 농담할 때 가슴이 철렁했는데, 도저히 다음주에 다시 연차를 낼 수가 없다”고 울먹였다.

수능 이후 지병을 치료하려고 했던 수험생들도 남은 1주일간 심적 부담과 함께 육체적 고통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수생 백모씨(19)는 “수능 다음날 치질 수술을 예약해 뒀는데 눈앞이 캄캄하다”며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책상에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는데 남은 1주일 동안 누워서라도 공부해야겠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생리통이 너무 심해 수능과 생리를 겹치지 않게 하려고 피임약을 복용해왔는데 어떡하면 좋으냐”는 여학생들의 사연도 잇따랐다.

지난 1년간 수험생과 함께 고생한 가족들을 위해 모처럼 잡은 해외여행 계획을 취소하는 사례도 줄을 이었다. 고3 수험생 어머니 민모씨(46)는 “딸 수능이 끝나면 가족 여행을 가기로 몇 년 전부터 계획했고, 맞벌이 부부라 직장에서 함께 휴가를 받기도 너무 힘들었는데 허탈하다”며 “휴가 기간 동안엔 딸 뒷바라지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휴가 복귀로 수능을 칠 수 없게 된 일부 군 장병 수험생은 다행스럽게 전원 구제됐다. 국방부는 16일 “이번 수능 응시 목적으로 휴가를 쓴 장병들은 개인 휴가가 아니라 공가(최대 4일)로 처리해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포항 지진으로 본인이나 가족이 피해를 입은 병역 의무자도 60일 범위 안에서 입영일자를 연기할 수 있도록 했다. 수능일에 맞춰 말년휴가를 나왔다는 오모 병장(22)은 “1년 더 공부해야 하나 싶어 눈앞이 캄캄했는데 국방부가 빠르게 조치해줘서 다행”이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며 혼란을 추스르고 있다. 수험생 최현지 양(18)은 “최고조의 컨디션으로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몇 달간 준비해왔는데 안타깝다”면서도 “포항 친구들과의 형평성을 생각하면 (수능시험 연기는) 잘한 결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학원의 도 넘은 마케팅과 몇몇 악성 댓글로 지진 피해자들이 한 번 더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이럴거면 포항사람들 다 죽는 게 나았다” “대학에서 포항 출신을 만나면 ‘왕따’시킬 생각”이라는 등 철없는 수험생들의 악성 댓글이 여럿 달렸다. 학원가에서는 ‘(이번 지진은) 지구가 준 선물’이라는 문구를 동원해 ‘마지막 1주일을 불사르는 지진 특강’을 홍보하는 등 자극적인 광고 문구가 등장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성수영/구은서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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