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으로 검찰 소환 안돼" 압박에
전병헌 "대통령께 누끼쳐 참담" 사의
청와대 "안타깝고 가슴아픈 일"
'읍참마속' 결단…개혁 속도낼 수도
여당 일부 "검찰이 칼춤 추나"
청와대-검찰 갈등 기류도
[ 조미현/김형호 기자 ]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은 16일 침통한 표정으로 청와대 춘추관에 들어섰다. 그는 마이크 앞에 선 뒤에도 즉각 말을 시작하지 못했다. 20초가량 침묵하던 전 수석은 “오늘 대통령님께 사의를 표명했습니다”라는 말로 입을 뗐다. 전 수석은 1분30초 정도 준비한 원고를 읽은 뒤 기자 질문을 일절 받지 않은 채 춘추관을 떠났다.
◆소환 예고 하루 만에 전격 사의
전 수석이 사의를 밝힌 것은 ‘한국e스포츠협회 자금 유용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 소환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전 수석은 전날까지만 해도 정면돌파 의지를 내비쳤다. 이날 오전 7시께 열린 현안점검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전 수석은 오전 10시 비서실장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현직 수석 신분으로 검찰에서 조사받을 경우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부담이 된다는 청와대 안팎의 강한 여론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 수석은 “국민 염원으로 너무나 어렵게 세워진 정부, 그저 한결같이 국민만 보고 가시는 대통령께 제가 누가 될 수 없어 정무수석의 직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검찰과 갈등설도 나와
전 수석이 사퇴하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비리 의혹으로 물러난 고위 인사가 됐다. 청와대는 전 수석 사퇴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도 함구했다. 하지만 적폐청산 등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온 문 대통령으로서는 핵심 참모가 비리 혐의로 낙마한 사실 자체로 리더십에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전 수석을 사실상 경질했다고 볼 수 있어 적폐청산에 한층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식적으로 “전 수석 결정을 존중한다”는 짧은 구두 논평을 내놨다. 하지만 속으로는 검찰에 대한 반발심이 강한 분위기다.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검찰이 그리는 대로 끌려가는 상황이다. 검찰이야말로 적폐인데 자기 조직을 위해 칼춤을 추고 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의원은 “현직 정무수석을 잡았으니 정치권에 대한 수사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조국 민정수석에 대한 불만도 내놓고 있다. 조 수석은 임명 때부터 “민정수석은 검찰 수사를 지휘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수사 지휘를 하지 않는 것과 수사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검찰 공화국을 만들게 방치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야 4당은 전 수석 사퇴와 관련해 “당연한 수순”이라며 “성역 없이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후임 정무수석 조만간 임명할 듯
청와대로서는 검찰과 갈등을 빚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도 부담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이든, 죽어 있는 권력이든 모든 것을 정의롭게 만들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며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본인이 부정한 혐의에 연루됐는지 알 길이 없다. 동료로서 안타깝고 청와대로서도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 해석됐다.
정무수석이 대(對)국회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청와대가 오래 공백을 두기는 힘들 것이란 예상이다. 후임으로는 최재성·강기정·김성곤·오영식·유기홍 전 민주당 의원과 진성준 현 정무기획비서관 등이 물망에 오른다.
조미현/김형호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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