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과 '태움'에 섹시댄스까지…나이팅게일도 못 버틴다

입력 2017-11-17 18:30   수정 2017-11-19 08:36

경찰팀 리포트
"이러려고 간호사 됐나 자괴감"
환자·보호자 툭하면 "예쁜 언니"
간호사 간 괴롭힘 '태움' 문화 만연

신입 간호사 3명 중 1명 이직
근무시간 넘겨도 시간 외 수당 없어
면허 있는 간호사 중 절반만 활동

정부가 나서 인력확충해야
노동환경 열악↔인력난 '악순환'
근로가치 반영 등 제도개선 필요



[ 구은서 기자 ] “터질 게 터졌다.”

최근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간호사들에게 짧은 치마를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게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자 해당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윤대원 한림대재단 이사장은 지난 14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지난 10월 재단이 주최한 장기자랑 행사에서 (소속 간호사들의) 심한 노출과 (춤추는) 모습이 선정적으로 보인 점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병원 간호사 A씨는 “당사자인 간호사들에게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 서명을 강요하면서 밖으로는 ‘깊은 사과’를 한다니 헛웃음이 났다”고 했다. 간호사 B씨도 “일이 고되고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건 그나마 참을 수 있지만 고작 ‘섹시댄스’나 추려고 간호사가 됐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태움’과 성희롱에 시달리는 ‘백의의 천사’

이번 사건이 성심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일선 간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표적인 게 ‘태움’ 문화다. 태움은 간호사 간 위계를 바탕으로 한 괴롭힘을 지칭하는 은어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 중인 1년차 간호사 C씨는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수간호사가 차트를 집어던지면서 질책하는 건 일상”이라며 “임신과 출산 순서를 정해놓은 ‘임신순번제’를 지키지 않은 동료에게는 노골적으로 면박을 줬다”고 했다.

간호사에 대한 성적 대상화 논란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이달 초 종영한 드라마 ‘병원선’에서는 간호사가 몸에 붙는 상의와 짧은 치마를 입고 근무하는 모습 때문에 거센 항의를 받았다. 대학 축제, 핼러윈데이 등에 노출이 심한 모습으로 변형된 간호사 복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간호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간호사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할 정도다. 사회건강연구소의 ‘보건의료노동자의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간호사의 16.8%가 성희롱과 성추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여름 간호사를 그만두고 재취업을 준비 중인 D씨는 “환자와 보호자가 간호사를 의료인으로 인식하지 않고 ‘예쁜 언니’ ‘젊은 아가씨’ 등으로 부를 때마다 ‘이런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살인적 노동 강도…면허 절반은 ‘장롱면허’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대부분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3교대 야간근무에 초과근무는 일상이다. 병동 입원환자를 24시간 간호하려면 하루 여덟 시간씩 3교대 근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대를 위해 업무를 인계하고 ‘약상(약을 환자 처방전과 맞추는 작업)’ 등을 하려면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때가 많다. 그럼에도 시간 외 수당은 ‘남의 나라’ 얘기다. 3년차 간호사 C씨는 “많게는 하루 12~14시간씩 병동을 정신없이 뛰어다닌다”며 “업무인계 시간 등은 근무시간에서 제외된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간호사 첫 월급이 36만원’이라는 익명 고발 글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간호사의 날’에 내건 “밥 좀 먹고 일하자”는 이 같은 간호사들의 노동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건의료노조의 ‘2016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6.6시간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2015년 대한간호협회 조사에 따르면 경력 1년 미만 신규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33.9%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간호사의 노동강도가 센 건 인력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간호사 인력이 수요보다 15만8554명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여기에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간호사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더 커졌다. 간호사 면허 발급 현황을 보면 인력 공급은 이미 충분한 수준이다. 최근 5년간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간호사 면허 소지자의 40~50%를 맴돌았다. 간호사 면허를 갖고 있지만 의료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장롱면허’가 많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인력난을 동시에 해결할 ‘두 갈래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희영 중앙대 간호학과 교수는 “열악한 근무환경 탓에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다시 인력이 부족해 노동 강도가 세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간호사 근로가치 반영 안 되는 의료수가체계

의료수가체계 역시 간호사 수급 불균형을 부채질한다. 현행 체계에는 간호사의 근로가치가 반영되지 않는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의사들은 의료행위에 비례해 수가를 산출해 보상받는다”며 “있는 수가도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간호사들은 수가가 없으니 병원 입장에서는 고용을 늘리기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법은 간호사 한 명에 1일 입원환자가 2.5명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간호사의 교대 근무, 건강보험상 비급여 항목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정확한 산출과 제재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선 병원들이 구인난을 호소하는 만큼 간호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갑질 병원’에 대한 징계와 인력 확충을 동시에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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