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2750년 역사의 고도 사마르칸트… 티무르제국의 웅장한 푸른 돔이 반기네

입력 2017-11-19 14:56  

해외 여행

실크로드의 심장부에 자리잡아, 이민족 침략에 동·서양 문화 혼재

정복자 티무르가 지은 화려한 사원
무덤 '구르 아미르'의 둥근 돔 눈길
돔 천장·내부 벽면 금빛으로 장식

레기스탄 광장에 세워진옛 학교인 ㄷ자형 메드레세 '걸작'
울루그벡 메드레세는 천문대

시끌벅적한 시욥 바자르 시장서 전통 빵 '넌', 과일 등 꼭 맛봐야
왕과 귀족의 묘지 샤히 진다
200m의 긴 도열…건축양식 볼만

아바즈 왕의 무덤 출입문엔 '천국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둔황의 사막을 지나 우루무치를 거쳐 국경을 지난다. 긴 그림자를 남기며 걷고 있는 낙타의 귀에는 모래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낙타를 이끈 대상(caravan)들이 오아시스를 향해 천천히 이동한다. 그들은 중간 여정지인 사마르칸트에서 숨을 고른다. 그리고 잠시 이곳에 흡수된다. 긴 협곡을 지나온 서늘한 바람소리의 어감이다. 혹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주문 같기도 하다. 낯설기 때문에 더 신비롭게 다가오는 이곳은 어떤 곳인가?

사마르칸트=글·사진 김민정 아시아나항공 부사무장 mjkim75f@flyasiana.com

실크로드의 심장, 사마르칸트

머나먼 서역의 땅 사마르칸트, 우리에게는 전설처럼 희미하고 아련한 곳이다. 이곳은 ‘중앙아시아의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는 275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도다. 이곳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소그디아나왕국의 마라칸다로 알려져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동서 교통 요지에 있어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렸다. 진귀한 물건이 오가고 나아가 종교와 정치, 외교 통로로서 문명의 산파 역할을 한 실크로드. 사마르칸트는 이 길의 한가운데에 있는 ‘실크로드의 심장’이었다.


실크로드가 융성하던 시절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은 소그드인이었다. 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입에는 꿀을 바르고 손에는 아교를 발랐다. ‘입으로는 달콤한 말로 손님을 꾀고 손으로는 돈을 움켜잡으라’는 의미다. 그 아이가 자라 5세가 되면 외국어와 수를 가르쳤다고 하는데 이들이야말로 조기교육의 원조가 아닌가 싶다. 사마르칸트는 이민족의 잦은 침략 또한 감내해야 했다. 그로 인해 여러 민족의 문화와 종교가 한데 섞이게 된다. 그것은 거대한 용광로처럼 달아올라 전설과 노래가 넘쳐흐르는 사마르칸트의 역사가 됐다. 역사 고도로서 위엄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유적지들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중앙아시아의 대제, 티무르의 시대

기원전 329년 알렉산드르 대왕은 사마르칸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마라칸다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을 남기며 이곳을 정복했다. 이 달콤하고 향기로운 땅을 주변에서 그냥 둘 리 없다. 이 침략을 시작으로 훈족을 비롯한 북방 유목민의 침략, 8세기 아랍의 침략 등 이민족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 1220년에는 몽골 칭기즈칸에게 정복당해 초토화됐다. 이로 인해 소그드인의 역사는 단절되고 만다. 이후 지속된 혼란의 시기를 틈타 1370년 중앙아시아 최대 정복자 아미르 티무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정하고 중앙아시아 전체를 호령했다. 그의 제국은 약 150년의 역사를 이어갔다.


대제국을 호령하던 그의 육신은 구르 아미르(Gur Emir)에 잠들어 있다. 구르 아미르란 ‘왕의 무덤’이란 의미다. 건물의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과 파랗게 빛나는 돔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갔다. 돔은 마치 그가 살아생전 썼던 왕관처럼 보였다. 64개의 홈 조각이 주름처럼 잡혀 있는 푸른 돔은 티무르 시대에 창조된 건축 기법이다. 티무르는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 빛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는 그가 좋아하는 색으로 가꾸어지기 시작했다. 티무르의 취향이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진주’로 만들어냈다. 몽골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페르시아와 아랍 문화를 흡수한 독특한 문화로 제국을 발전시켜 나간 그는 수도 사마르칸트를 중앙아시아 최대 문화 중심지로 만든 인물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의 초상화가 복도에 걸려 있었다. 초상화 밑으로는 그가 정복한 영역이 지도에 표시돼 있었다. 티무르는 재위 30년 동안 전장에 나서 정복사업에 매진했는데 그 결과 중앙아시아 지역은 물론 중국에서 인도 북부와 터키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정복한 땅에서 현지의 뛰어난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데려와 사마르칸트에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을 짓도록 했다. 정작 자신은 화려한 궁전에서 살지 않고 천막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이 거대한 땅을 제압하던 왕의 잠자리가 천막이었다니, 그의 몸속에 흐르던 유목민의 피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관이 놓인 실내로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있었다. 그의 시신은 깊은 지하 무덤에 안치돼 있다.


티무르는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고 위대한 사원을 건설하고자 했다. 비비하눔 사원(Bibi khanim Mosque)이다. 비비하눔은 티무르가 8명의 아내 중 가장 사랑하던 왕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사원에는 비극적인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티무르가 인도를 원정하던 중 사원을 짓던 건축가와 왕비의 부정이 발각돼 이들은 사형에 처해지고 만다. 이후 티무르는 아름다운 얼굴로 남성을 현혹시키지 못하도록 여성들에게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다닐 것을 명했으며, 훗날 이것이 차도르가 됐다는 설이 있다.

메드레세의 앙상블, 레기스탄 광장

레기스탄은 ‘모래의 땅’이라는 의미다. 티무르 시대에는 바자르였던 이곳이 그 이후 시대에 메드레세(이슬람의 고등 교육시설)가 지어지며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 오늘날 이곳은 국가적인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사마르칸트의 대표적인 명소다. 세 개의 웅장한 메드레세가 들려주는 앙상블에 빠져들어보자. 수세기의 역사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 개의 메드레세 중 왼편에 있는 울루그벡 메드레세는 1420년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벡 왕이 세운 것이다. 울루그벡은 티무르제국의 황금기를 통치한 왕으로, 우리 역사의 세종대왕처럼 다방면의 학문에 조예가 깊은 왕이었다. 시와 역사를 좋아하고, 뛰어난 수학가이자 천문학자였다. 그가 세운 천문대에서 관측된 1년은 현재 주기와 오차가 1분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시대에 이룬 천문학의 발달은 오늘날에도 인정받는 대단한 업적이다. 그래서인지 울루그벡 메드레세의 정문은 별자리를 형상하는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맞은 편에 있는 셰르도르 메드레세(1619~1636년)는 티무르 왕조 이후의 건축물이다. 셰르도르란 ‘사자가 있다’라는 의미다. 정문 위에 사슴을 쫓는 사자 그림이 그려져 있고 사자의 등 위쪽 태양에는 당시 영주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문화권에서 동물과 사람의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은 파격적인 일이다. 이로 인해 무슬림의 불만을 샀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통 방식으로 지은 메드레세가 정면으로 보이는 틸라코리 메드레세(1646~1660년)다. 틸라코리란 ‘금박으로 된’이란 의미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입을 다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벽면과 천정이 온통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살아있는 시장- 시욥 바자르

시욥 바자르는 과거 실크로드 바자르의 맥을 잇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실크로드 대상들이 짐을 풀어 물건을 사고팔던 이곳에서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흥정하며 시끌벅적하게 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활발했고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바자르 입구에서는 당나귀가 짐을 옮기기 위해 등에 수레를 얹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대로변에는 오늘날의 교통수단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바자르의 오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는 듯한 풍경이다.


세계 최초 실크로드 도보여행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그의 저서 《나는 걷는다》에서 “과일 맛 하나만으로도 사마르칸트를 여행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했다. 전형적인 사막형 대륙성 기후를 띠기 때문에 이곳의 제철과일은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맛이다. 그중 제일은 역시 뜨거운 여름이 키워낸 멜론일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늦가을의 과일 석류였는데 그 빨간 알갱이들이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이곳은 말린 과일과 견과류 또한 유명하다. 땅콩, 호두, 아몬드, 피스타치오, 건포도, 건살구, 건자두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지나는 길마다 먹어보라고 건네주는 인심에 배가 부를 정도였다. 꿀을 파는 여인은 숟가락으로 벌집을 떠서 시식을 권했다. 꿀이 가득 찬 벌집꿀의 식감은 마치 캐러멜처럼 입안에서 오랫동안 쫀득거렸다. 양동이나 보자기에 담아 치즈를 팔고 있는 여인들을 지나칠 땐, 이 중에서 혹시 강제 이주된 고려인 3세가 있지 않을까 싶어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다른 구역에는 수레바퀴 모양의 노란 빵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대표적인 빵, 넌(non)이다. 화덕에서 구워낸 빵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팔기 전에는 두꺼운 담요로 덮어둔다. 빵은 특별한 맛이 있다기보다는 담백했다.

왕이 살아있는 곳 - 샤히 진다

고대 도시 아프로시욥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 왕과 귀족의 묘당이 있는 곳, 샤히 진다가 있다. 샤히 진다는 ‘살아있는 왕’이란 의미다. 11세기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메카 시장이던 쿠삼 이븐 아바즈의 영묘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왕’ 아바즈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순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샤히 진다의 정문에서 계단을 오르니 푸른 묘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석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묘당들이 길을 따라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아바즈의 묘당이 설치된 이후 몇 세기에 걸쳐 후대의 왕과 귀족은 그 앞에 자신들의 묘지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길이 200m에 이르는 긴 열을 이뤘다. 지어진 시기별로 건축 양식이 다르니, 그 차이를 발견해가며 걸어보는 것도 좋다. 길의 끝에 다다르면 마지막 관문이 나온다. 이곳에는 세 채의 묘당이 ‘ㄷ’자 형태로 모여 있다. 에메랄드빛과 푸른 기운이 감도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보석처럼 푸른 빛깔은 이 어둠과도 잘 어우러져 시원(始原)의 아득함을 불러일으켰다.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이곳은 ‘살아있는 왕’ 아바즈의 영묘가 있는 곳이다. 아바즈는 사마르칸트에 설교하러 왔다가 기도 중 피습당해 목이 잘렸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기도를 마친 뒤 자신의 목을 들고 우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지하로 연결된 길을 통해 천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를 천국으로 인도한 우물이 이곳에 있다. 사람들은 아바즈가 천국에서 지금도 살아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면서 사마르칸트를 지켜줄 것이라 믿고 있다. 아바즈 영묘의 출입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천국의 문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글귀 때문인지 활짝 열린 문은 마치 천국의 문처럼 보인다. 살아있는 왕, 아바즈가 사마르칸트를 지켜보고 있던 시간. 그 천 년이라는 세월이 이 공간에 고여 있는 듯했다.

그리고 고요한 심해에 잠긴 듯 시간의 움직임이 무겁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 서역의 낮달이 묘당 사이로 길게 드리워졌다.

여행정보

서울에서 사마르칸트까지 직항은 없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타슈켄트 국제공항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12월 하순부터 인천~타슈켄트 노선을 주 3회 운항할 계획이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 이동은 비행기로는 1시간, 고속 기차로는 2시간, 차량으로는 4시간가량 걸린다. 우즈베키스탄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며, 입국 시 두 장의 세관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때 소지한 외화는 적은 액수라도 반드시 금액을 기재해야 한다. 현지 화폐 단위는 숨이며, 시차는 한국보다 4시간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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