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TPP 11' 한국에 열린 전략적 공간

입력 2017-11-20 17:45   수정 2017-11-21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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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11 추진 합의는 갈수록 고압적으로 변해 가는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데서 비롯

TPP 참여를 선뜻 결심 못했던 한국
무역이 생존의 조건이란 사실 알아야"

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byc@ewha.ac.kr >



최대주주이던 미국의 이탈로 용도 폐기됐다고 생각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부활했다. 지난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와중에 따로 모인 TPP 참가 11개국은 미국 없이도 TPP를 그대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한국·중국 방문에 파묻혀 주목받지 못한 TPP11(미국이 빠진 TPP)의 합의는 무역주도 경제발전을 추구해온 동아시아국가들이 거센 보호주의 파고를 헤쳐가려는 몸짓이다.

TPP11은 새로운 시작이다. 당장은 어렵지만 미국이 언젠가는 TPP에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기존 TPP 협상 중 미국에서 논란이 된 일부 규정을 유보해 미국 참여 시 추가협상 가능성을 열어놨다. 미국을 향해 열린 문은 한국에도, 다른 국가에도 열려 있다. 일부에서는 그간 참여 의사를 밝힌 한국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5개국이 추가 가입해 ‘TPP16’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한국은 TPP11에 가입할 것인가.

21세기 최대 규모의 경제협정이던 TPP가 주목받은 이유는 미국·일본이 동시에 참여한 유일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었고, 중국이 배제된 협상이었기 때문이다. 2015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1세기 국제통상규범을 중국이 만들게 할 수 없다면서 TPP를 밀어붙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잃어버린 20년’의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 부활을 위한 ‘아베노믹스’ 및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일동맹의 핵심 축으로 TPP를 활용했다. 중국은 TPP를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이라며 맹비난했다.

TPP는 2015년 10월 타결됐지만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면서 비준 기회를 놓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공약대로 TPP에서 미국을 이탈시켰다. 중국은 표정관리에 바빴고 일본엔 비상이 걸렸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당선 직후 뉴욕의 트럼프타워로 날아가 TPP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대목에서 전문가들은 TPP는 추동력을 잃고 좌초할 것으로 예측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배제된 상태에서 일본이 주도한 다자협상은 없다는 역사적 경험도 그런 예측에 힘을 실어줬다. 세계의 공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제도 개혁의 부담도 마다하지 않은 베트남 등 남은 협상 참여국의 반응도 부정적이었다.

TPP11의 태동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아베노믹스로 경제회복세를 체감하는 일본으로선 TPP 모멘텀을 놓칠 수 없다는 경제전략과 갈수록 국제규범을 무시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외교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베트남은 중국과 외국인 투자 유치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TPP11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TPP11을 가능케 한 것은 미국이 복귀하리라는 희망보다 갈수록 고압적, 배타적으로 돼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당장의 다급함 때문이다. 미국의 힘을 빌려서 중국을 견제하지 못한다면 11개국이 연합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명박 정부 후반 그리고 박근혜 정부 초반에 TPP 참여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은 선뜻 참여를 결심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의 논리는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TPP 참여국과 양자 FTA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만, 일본 멕시코와는 FTA를 체결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궁색한 변명이었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중국과 일본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과의 FTA가 부담스러웠고, 중국과 FTA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견제하려는 음모라고 TPP를 비난하던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치열한 찬반논란 속에서도 정권의 이념성향과 무관하게 한·미 FTA를 추진하고 발효시켰던 그 한국이 맞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었다.

TPP가 타결되던 2015년 10월, 한국 언론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이 왜 TPP에 빠졌는지 뭇매질을 했다. 그로부터 약 2년 후 미국이 빠진 TPP11의 타결에 한국 언론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다. 여전히 한국에 무역은 생존조건이며 TPP11은 한국에 열린 전략적 공간이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byc@ewh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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