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토론의 품격

입력 2017-11-20 18:54  

김정관 <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jkkim8798@kita.net >



정부에서 근무할 때 ‘토마토’란 모임을 한 적이 있다. ‘토요일마다 토론하다’에서 앞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풀기 어렵고 이견이 있는 정책 과제에 대해 토론을 통해 답을 구해보고자 시도한 것이었다. 상당히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토론 문화가 성숙되지 않은 것 같다. 활발한 토론이 가능해지려면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의 오류도 솔직히 인정해야 하는데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에서는 쉽지가 않다. 아마 우리의 주입식 교육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많은 토론이 있었지만 그 으뜸으로 조선 시대 대학자 이황과 당시 신예 유학자 기대승이 벌인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이 꼽힌다. 이는 1558년 당대 대학자이자 성균관 대사성인 58세의 이황에게 과거에 막 급제한 32세의 젊은 학자 기대승이 이황의 사단칠정 이기(理氣)론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이황은 자신의 논리에 잘못이 있음을 선뜻 인정하고 기존의 논리를 수정해 다시 기대승의 의견을 구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무려 13년간 1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토론을 이어갔다.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성리학의 근본 원리에 관한 논쟁인 만큼 격렬한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었지만 두 학자는 거친 표현을 쓰거나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위와 나이를 초월해 품위 있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기나긴 토론을 이어갔다.

얼마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공청회가 농축산업계의 실력 저지로 중단됐다. 이를 지켜보며 조선 시대 두 학자 사이에 이뤄진 품격 있는 토론 문화가 왜 우리에게 제대로 전수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공청회는 FTA 협상 시작에 앞서 각계 의견을 듣고 조율해 우리의 입장과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법적 절차다. 한·미 FTA 개정으로 피해가 예상된다면 공청회에서 충분히 의견을 밝히고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해야 함에도 단상 점거와 토론 방해로 공청회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이해당사자가 찬반 의견을 피력할 기회의 장을 내팽개친 채 무작정 반대만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공청회에서 표명된 의견은 협상 전략 마련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 선조는 약 500년 전 토론 문화의 진수를 보여줬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이를 이어받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품격 있는 토론 문화를 정립해 나가야 한다.

김정관 <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jkkim8798@kita.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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