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각종 스포츠는 물론 사회·경제현상에서 ‘현미경 분석’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는 일본 제약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대한 ‘마이크로 데이터’분석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읽었다는 소식입니다. 바로 여성고객의 부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여성고객이 전체 수요의 70%를 차지하는 효과 빠른 진통제 판매가 크게 늘어난다거나 소화제 시장에서 여성 고객이 급증하고 있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육식형 여성(肉食女子)’의 등장이라는 일본 언론의 표현도 눈길을 끕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선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일하는 방식 개혁’ 등 의 영향으로 대중용 일반의약품 소비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효과가 빠른’ 해열·진통제의 소비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종래 중년 남성이 주 고객이던 위장약 시장에선 ‘육식 여성’이라는 신여성 수요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제약사들도 여성 시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여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노력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인테지에 따르면 일본 일반의약품 시장은 2016년에 1조938억엔 규모라고 합니다. 20년 전에 비해 15%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위축되는 시장에서도 성장세가 두드러진 분야가 있습니다. 두통이나 생리통에 효과가 있는 해열·진통제 시장규모는 538억엔으로 전년 대비 15%성장했습니다. 해열·진통제 약진의 배경에는 여성이 있습니다. 주로 직장여성이 이 분야 시장 성장에 공헌했습니다.
일본에서 일하는 여성은 지난해 2883만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124만명 늘었습니다.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이 늘면서 빠른 효과를 보이는 해열·진통제를 찾는 여성도 증가했다는 설명입니다.
다이이치산교헬스케어가 선보인 해열·진통제 ‘로키소닌S’시리즈는 구매층의 70%가 여성이라고 합니다. 이 회사 조사에 따르면 직장여성 3명 중 1명이 주 1회 이상 두통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관리직 여성의 두통 비율이 높다라네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많지만 육아와 가사 부담에서 자유롭지도 않습니다. ‘효과가 빠른’ 진통제를 여성들이 찾는 이유라고 합니다.
“영원한 여성이 세계를 끌어올린다”는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 처럼 위장약 시장을 구원한 것도 ‘중년 아저씨’가 아니라 여성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일본 위장약 시장 규모는 520억엔으로 20년전 대비 40% 줄었습니다.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대기업 회식이 줄고, 단체 음주가 크게 줄어든 것이 위장약 시장 축소의 주요 원인이라고 합니다.
대신 위장약 시장을 지탱해 주는 것이 소위 ‘육식 여성’이라고 합니다. 신세이은행 조사에서 술자리수 빈도가 남성중에선 50대가 월 2.5회로 가장 높았는데, 20대 여성 직장인은 월 2.8회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20~30대 여성의 위장약 연간 구매액도 따라서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제약업계에선 40대 이상 ‘아저씨’가 위장약의 주요 구매층인 것은 변함없지만 위장약 시장 축소를 막는 것은 젊은 여성이라는 말도 돌고 있다고 합니다.
일반 약품 외에도 여성용 한약시장도 성장해 일반용 약초시장은 2016년 489억엔 규모로 20년 전에 비해 1.8배 늘었습니다. 이 시장 역시 중년 여성이 주 고객이고, 오한과 부종 등 여성병을 중심으로 젊은 애용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여성 전용 한방병원도 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느는 것은 보수적이라는 일본 사회에서도 피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다만 그 같은 사회변화에 따라 여성용 약품의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변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까 하는 느낌입니다. 제약시장에서 여성이 ‘큰 손’으로 등장한다는 소식은 과연 ‘좋은 뉴스’일까요 ‘나쁜 뉴스’일까요.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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