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B급 전략실-롯데 편] "신동빈 회장, 일본 가서 자랑하더라"

입력 2017-11-21 14:35   수정 2017-11-21 14:35


글로벌 경영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졌고 사물인터넷(IoT) 등 인공지능(AI) 서비스가 소비자를 한데 모았다. 어제의 성공이 더이상 내일의 성공이 아닌 시대다. 변신을 위해 실험에 나서는 기업들이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경닷컴]은 새로운 실험을 통해 '100년 기업'을 가꾸려는 사람과 조직을 직접 만나 시리즈로 게재할 예정이다.<편집자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일본 사업을 점검하기 위해 도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 내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집에서 손쉽게 쇼핑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백화점 방문율은 떨어졌다. 아이들한테 과자는 더 이상 최고의 선물이 아닌 시대가 됐다. 호텔은 점점 넘쳐나는 데 관광객은 한국을 찾질 않고 있다.

가방 안에 든 신제품 하나가 신 회장에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AI(인공지능) 빼빼로. 지난 9월 한국 롯데제과가 AI 시스템('엘시아')을 통해 처음 만들어낸 과자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사례를 찾아도 AI로 과자를 만들어 낸 일은 없다. 신 회장은 일본 롯데제과 임원들에게 "이게 바로 AI로 만들어 낸 과자인데 한국에서 반응이 좋다"며 "일본 계열사들도 AI 도입 가능성을 타진해보라"고 지시했다.

신 회장이 롯데를 글로벌 유통기업으로 바꾸기 위해 지난해 12월 임직원들에게 직접 던진 화두가 AI였다. 오는 2021년까지 롯데의 전 계열사에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으로 신 회장의 복심인 황각규 롯데지주 사장으로 하여금 직접 진두지휘하게 했다.

IBM 왓슨 시스템을 도입키로 한 롯데는 지난 1월 60여명 규모의 팀을 꾸렸다. AI-TFT(인공지능 태스크포스팀). 신 회장의 지시에 따라 계열사 중 롯데제과와 롯데쇼핑이 주축이 됐다. 대표 계열사인 만큼 과자회사와 유통회사에서의 AI 도입 가능성을 테스트해보라는 뜻이었다. 사내에서 최고의 브레인으로 꼽히던 박동조 롯데제과 마케팅기획팀 수석(사진·43)이 초대 AI-TFT의 팀장을 맡았다.

지난 15일 [한경닷컴]과 만난 박 팀장은 "처음엔 '무슨 AI로 과자를 만든다는 거야'라는 의구심을 나타냈지만 팀이 꾸려진지 9개월 만에 첫 제품이 나오면서 다들 놀라는 분위기"라며 "아직 시행착오를 거치는 단계에서 나온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좋아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300만개 한정으로 출시된 '빼빼로 카카오닙스'와 '빼빼로 깔라만시 상큼요거트', 이 두 AI 빼빼로 제품은 나온 지 두 달도 안 된 지금 전량 판매됐다. 특히 깔라만시 제품은 롯데제과 내부에서도 '계절적으로 맞지 않다', '맛이 보편적이지 않다' 등 우려 속에 출시됐으나 보란 듯이 완판됐다.

박 팀장은 "'엘시아'는 이제 막 뜨기 시작하는 맛과 소비자 선호를 분석해내도록 설계됐다"며 "트렌드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수집한 뒤 경영진을 설득해 겨우 제품을 내면 이미 소비자 관심이 끝나 재고 처리에 바빴던 기존 제과업계의 관행을 완전히 뒤바꿔놨다"고 설명했다.

엘시아가 AI 빼빼로를 만들어낸 원리는 데이터, 상관도, 추세값 등 3가지 알고리즘을 기본으로 한다. 한 달에 약 1000만건 가량의 소셜 데이터를 '원재료'로 입력한 뒤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추세 값과 입력자가 궁금해 하는 상관도 값에 각각 가중치를 매겨 지수로 만든다.

예를 들어 최근 소셜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초콜릿 또는 과자와 함께 어우러지는 재료 중 가장 뜨거나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것이 오트밀과 깔라만시로 나타났고, 추세적으로 볼 땐 상큼한 맛이 유행으로 나타나 이와 결합할 수 있는 깔라만시로 최종 낙점된 것이다.

박 팀장은 "기존에는 마케팅기획팀에서 마케터 각자의 주관과 경험을 통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이를 합리화 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한 뒤 연구소에 제품 제안을 해 타당성을 검토받았다"며 "그 뒤에도 제품 출시에 권한이 있는 팀들을 거친 뒤 경영자들을 설득하고 나면 이미 소비자 관삼에서 멀어진 제품이 돼 아쉬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AI 시스템은 기존 마케터들이 수집하는 자료의 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과를 보여주기까지 불과 2~3달 밖에 안 걸렸다"며 "현재 어떠한 자료를 입력할 것인지에 대한 시행착오 단계여서 그렇지 시스템이 완성되면 제품 구상부터 출시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현재 마케팅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완성하고 나면 생산, 물류, 영업, 광고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인공지능 기반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며 "롯데제과와 롯데쇼핑 등 두 곳 계열사에서 테스트가 끝나면 전 계열사에서 활용할 수 있게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의 이 AI-TFT는 현재 AI 과자를 만들어 내는 것 외에도 백화점 멤버십 소비자들의 취향을 분석해내는 작업, 호텔의 미니바를 어떻게 하면 개인 맞춤형으로 구성해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인지, 롯데리아 메뉴 구성을 연령별 성별 등에 따라 구성할 수 있는지 등을 테스트하고 있다.


박 팀장은 "처음에 AI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실무자 워크숍을 통해 '콜 센터 고객 분석'이나 '백화점 멤버십 분석' 등 가급적 정량적으로 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 회장님에게 보고했다가 된통 혼이 났다"며 "기존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것들을 해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AI로 만든 빼빼로가 나온 뒤 이 제품을 일본 롯데제과에 들고 가 크게 자랑하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며 "회장님이 AI에 대한 절박한 마음이 없었더라면 아마 AI 빼빼로 같은 제품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시스템을 통해 변하고 있는 것은 제품만이 아니다. 박 팀장은 AI 시스템 하나가 전체 기업의 의사결정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각 단계의 팀장들이 갖고 있는 여러 '주관'이 충돌해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데 결국 이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라며 "반면 AI 시스템은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정도의 능력으로 자료를 취합한 뒤 객관적 데이터를 내놓으니 아무도 토를 달기 어려워 의사결정이 신속해졌다"고 만족해했다.

마케터로서의 그의 역할도 완전히 바뀌었다. 기존에는 시장조사, 자료수집에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면 이제는 데이터 분석에만 몰두한다. 박 팀장은 "기존에는 1차원적인 일에 많은 시간을 썼는데 이제는 AI로부터 좋은 답(출력값)을 얻기 위해 좋은 '질문'(입력값)을 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며 "AI는 마케터가 더 마케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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